볼 수 있는 시간, 여름

도시농부일지(7)

by 최선화

늦게 온 봄과는 달리 여름은 이르게 왔다. 5월 중순이 넘어서자 햇볕도 뜨겁고 기온도 30도 전후가 되었다. 어느 때는 비가 너무 자주 오고, 어느 때는 비가 기다려도 안 왔다. 여름, 밭에 있는 작물이, 땅을 딛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커가는 시간이다. 봄이 준비운동을 하는 시간이라면 여름은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성장에 몰두하는 시간이다. 작물은 이미 자신이 자리 잡은 곳에 적응을 다 하고 자신을 뽐내려 한다. 나는 나대로 농부로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아빠는 텃밭 농사짓는 나에게 만날 때마다 말씀하셨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햇볕이 내리쬐면 햇볕이 내리쬐어 마음이 쓰이는 게 농사다. 애들을 늘 아기 다루듯 해야 한다”라고. 이제 이 애들을 아기다루 듯해야 하는 시간을 본격적으로 맞이한다.


5, 6월 초여름은 쌈 채소의 시간이다. 텃밭 상추와 겨자채, 깻잎은 갈 때마다 새 잎을 내어 더 많은 잎에게 세상을 선물한다. 지난주에 세상에 나와 넓은 잎으로 변한 상추와 깻잎을 톡톡 따 집으로 가져온다. 식탁은 푸성귀로 풍성하다. 우리 집 식탁만이 아니다. 텃밭 상추로 엄마네 식탁도, 옆 동 민혁이네 식탁도, 앞 동 상현이네 식탁도, 같은 동 수진이네 식탁도 풍성해졌다. 반찬이 없어도 걱정 없는 때가 바로 이때이다. 밭에서 따온 채소와 된장만 있어도 몸이 채워진다. 마법을 부린 듯하다. 한 장의 여린 잎이지만, 이 잎이 가져온 넓은 텃밭의 이야기가 식탁에 놓여있다. 밭 옆에 우두커니 서서 긴 시간 작물들을 지키며 뽕나무가 채소에게 한 이야기도, 뽕나무에 열린 오디가 진한 보랏빛을 띠도록 응원했던 쌈 채소의 목소리도, 이 한 장 한 장의 잎 속에 담겨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식탁이 풍성해지고 몸이 채워지는 것일 게다.

6, 7월은 구황작물과 열매작물의 시간이다. 봄에 심은 감자가 결실을 맺는 시간이자 가을 고구마를 위해 모종을 심는 시간이다. 땅에서 나온 감자가 감자를 낳기 위해 다시 땅으로 들어간 지 약 100일 만에 씨감자는 주렁주렁 감자를 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농약 없이도 이렇게 잘 자란 감자가 대견하다. 줄줄이 뿌리에 매달린 감자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냥 웃음이 아니라 함박웃음이다.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캐다 감자에 흠집을 내기도 한다. 흠집이 나면 어쩌랴, 집에 감자를 한 아름 가져가 쪄먹고 구워 먹고 볶아먹을 걸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몸이 둥둥 떠오른다.


감자 옆 오이와 가지도 길게 길게 아래를 향해 키를 키운다. 지난주 봤던 새끼손가락보다 작았던 오이는 일주일 사이 시장 좌판에 올라가 있는 오이만큼 자라 있다. 가지는 곧지 않고 몸을 배배 꼬고 있다. 무엇 때문에 언짢아졌는지 모르겠다. 텃밭주인이 눈길을 많이 주지 않아서일까, 오이의 곧음에 질투가 나서일까.


당근도 이 시기에 뽑는다. 내 밭에 심은 당근은 속절없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옆 강매언니네 밭에는 당근 잎이 무성하다. 길게 자란 당근 잎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힘을 준다. 흙속에서 주황색을 만든 당근이 쏘옥 뽑힌다. 당근의 모습이 너무나도 곱고 예쁘다. 모아두니 더 예쁘다. 잎이 달린 당근과 고추 몇 개, 그리고 들꽃을 한자리에 모아 두기만 해도 작품이 된다. 당근이 묻는다. “나 어때? 예쁘지?” 내가 대답한다. “당근이지.”


감자와 당근을 뽑아 비어있는 밭에 고구마 모종을 심는다. 감자는 씨감자를 심었는데, 고구마는 씨고구마를 심는 게 아니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고구마 모종은 고구마 순에 작은 뿌리가 나 있는데, 그 뿌리를 땅에 심는다. 감자, 고구마가 구황작물이라고, 땅속에서 자란다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비슷하게 심고 키우는 게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이 자신만의 성향이 있음을 감자 고구마를 보며 다시 알아간다. 내 속에서 나온 두 아이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비슷하게 키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7,8월은 캔 감자를 내 몸에 채우는 시간이자 고추의 시간이다. 이곳저곳에서 지인들이 시골에서 감자를 보내왔다며 한 바구니씩 나에게 나누어주었다. 베란다에 신문을 깔고 감자를 펼쳐놓았다. 그중 백미는 내가 키운 감자다. 크기는 다른 감자의 사분의 일 정도이지만, 100일의 시간을 나와 함께해서인지 정이 간다. 크기가 작아 조림하기에 알맞다. 흙을 털고 깨끗이 씻어 껍질 채 구워 먹기도 좋다. 밭에서 가져온 감자와 당근과 가지와 고추를 적당히 썰어 후추와 소금을 뿌리고 올리브유를 뿌려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후 접시에 담으니, 호텔 레스토랑에 와 있는 듯하다. 포크를 잡고 입에 넣어 호사를 부려본다. 이게 다 텃밭 덕분이라고, 텃밭이 내 삶에 풍요를 가져다주었다고 혼잣말하며 웃는다.


뜨거운 태양은 고추에게 성장의 자유를 선물한다. 봄에 심었던 고추는 키가 쑤욱 자라 이곳저곳에서 고추를 맺는다. 매주 가서 따는데도 일주일 후 딴 만큼 또 따온다. 고추가 쉴 새 없이 자란다. 파란 고추가 붉은빛으로 변해 있다. 붉은빛이 각기 다르다. 쨍한 빨간빛이 나는 고추도 있고 깊은 붉은빛을 내는 고추도 있다. 초록빛에서 붉은빛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는 고추도 있다. 붉은 고추를 따온 날, 그 고추를 갈아 얼갈이배추김치를 담았다. 여름의 맛을 태양을 담은 고추가 내주었다.


5월 중순에 시작한 여름은 9월이 지난 지금도 계속이다. 여름이 길어졌고, 그 시간만큼 작물의 시간도 길어졌다. 나에게 온 풍성한 작물들에게, 여름의 빛과 물과 바람을 받으며 자신을 뽐내온 작물들에게 나는 그동안 애기 대하듯 ‘잘 켜줘 고맙다’고 칭찬의 말을 더하며 수확했다. 더디 자라거나 자라지 않은 작물에게는 애기 대하듯 ‘자라기가 힘들구나’라고 위로의 말을 더하며 주변을 둘려봤다. 아빠의 말씀대로, 애기 대하듯, 그렇게 농부의 첫여름을 보냈다. 그런 후 깨달았다. 아빠의 말씀은 농사의 진리라는 걸.


밭에서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결실을 맺은 나의 작물은 내가 밭을 찾을 때마다 매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상추와 깻잎도 그랬고, 오이와 가지도 그랬다. 매일 밤 서로의 멋짐을 뽐내지 않고서야, 그렇게 곱고 예쁘게 자랄 수 없지 않은가. 개츠비가 열었던 파티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축제를 그들끼리 텃밭에서 열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칭찬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깜깜한 밤에 말이다.


빛과 물과 바람을 볼 수 있는 시간, 빛과 물과 바람을 작물이 자신의 몸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여, 그 자람을 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우린 ‘여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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