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봄

도시농부일지(6)

by 최선화

3월의 이른 봄날이었다. 나는 라디오를 켜고 운전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목소리의 DJ가 한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었어요. 우리 아이가 맞이하는 첫 봄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맞는 ‘첫 봄’이라는 말에 나는 DJ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모든 것에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겠지만, ‘봄’ 앞에 붙은 ‘첫’은 나의 첫 봄은 어땠을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사연을 들으며 나는 나의 첫 봄을 상상했다.


6월 초에 태어났으니, 제법 10개월은 지나 첫 봄을 맞이했겠구나. 시골의 할머니들의 얘기에 따르면, 나는 동네 떠나가라 어지간히 울어재낀 울보에, 까탈스럽기는 세상 저리 가라였고, 늘 엄마 등만을 찾았다고 했다. 추측컨대 따뜻한 봄날 아장아장 걸음을 시도했을 만 도한데, 아마 나는 첫 봄에 엄마 등에 매달려 고래고래 악쓰며 울고 있었겠지. 혹시 모르겠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비행을 하고 있던 꽃잎이 울고 있어 벌어진 내 입 속으로 들어가 착륙했을지도. 그 꽃잎의 달큼한 맛에 순간 입맛을 다시며 나는 울음을 그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첫 봄을 그려보다가 ‘올해 맞이하는 봄 또한 나에게 첫 봄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다. 2025년에 맞이하는 첫 봄. 소중한 봄. 내가 흙을 만지고 씨앗을 만지며 마을 언니들과 더불어 자라는 새 봄.


올봄, 농부가 된 첫 봄이다. 마을 언니들의 배려로 나에게도 밭이 주어졌다. 나에게 주어진 2~3평 남짓한 밭에 3월 중순 퇴비를 주고 삽과 호미로 밭을 갈았다. 닭 분료로 만든 퇴비는 흙과 잘 어우러졌다. 퇴비의 냄새는 자연 속에서 충분히 맡을 수 있는 구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냄새가 건강함을 말해주었다. 땅이 보다 튼튼해질 것이라는, 그래서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이 잘 여물 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날 호미질을 하며 나는 지렁이와 서로 놀라며 인사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어둑한 세상에서 꼼지락 거리며 쉬고 있었을 지렁이는 내 호미질로 의도치 않는 바깥구경을 하게 되어 놀랐고, 나는 다소 굵고 긴 지렁이가 땅속에서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놀랐다. 우린 놀랐던 첫 만남을 뒤로한 채, 인사를 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러고선 바로 나는 땅 위 이름 모를 풀들을 걷어내었다. 물을 뿌려 밭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밭농사 채비는 이렇게 찬찬히 이루어졌다.


지렁이가 살고 있는 흙만 있던 이곳은 봄날 내가 뿌린 씨앗과 쪼그려 앉아 심은 모종으로 조금씩 연두 빛으로 탈바꿈했다. 씨앗을 심을 때는 씨앗이 이렇게 작고 예쁘구나! 감탄을 하고, 모종을 심을 때는 가녀린 모종이 안쓰러워 조심스레 땅에 옮겨 심었다. 봄날이 더해지며, 씨앗을 심은 자리에는 무거운 흙을 뚫고 연한 새싹이 조심스레 나오고, 여린 모종은 땅과 어우러져 제법 힘을 얻어갔다. 그렇게 봄날에 햇살과 물과 흙과 나의 사랑과 노동이 더해져 텃밭은 차츰 채워졌다.


앞으로 더욱 진하게 푸르게 변할 그 자그마한 땅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이미 나는 경력 15년 차 농부가 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첫 농사가 망해 아무 수확도 없이 텅 빈 소쿠리를 들고서는 옆에 있는 마을 언니네 밭 감자와 당근을 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농부가 되어 맞이한 첫 봄, 2025년 봄은 나에게 특별한 ‘첫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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