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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한 로보트 Sep 21. 2023

3. 불행을 깨버리는 1단계 - 50만 원짜리 숙제

나를 무섭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무섭지?

1000만 원짜리 의사와의 첫 상담 이후 숙제가 떨어졌다. 내가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나를 위협하는 것, 나를 안정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내가 성장을 위해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느끼는지 한 시간 동안 고민해 적어 오는 것이다. 위협과 성장은 각각 최소 5개, 안정은 10개 이상 적어오라는 게 과제였다. 


사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귀찮은 마음도 컸다. 끝까지 안 하고 버티다가 그다음 세션을 가는 버스 안에서 구겨진 노트에 줄줄이 써보았다. 하고 싶은 의지가 없었지만 50만 원이 아까워서 했다. 병원비 어차피 내가 내는 돈도 아닌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그까짓 거 쉽지 뭐. 


나는 어떤 게 제일 무서워?


사실 너무 당연히 내가 알고 있는 거라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 적 조차 없었던 것 같다. 당연히 아는 걸 뭐 하러 물어? 하지만 지금까지 나조차도 나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이 질문들이 나와의 첫 대화를 여는 포문이 된다. 


대답을 할 때 중요한 건 단순히 위협의 대상뿐만 아니라 그 이유도 함께 작성하는 것이다. 5개만 쓰라고 했는데 쓰다 보니 어느새 리스트가 길어졌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이렇게 많았구나. 겁쟁이다.

엉망인 글씨에서 내가 얼마나 귀찮아했는지가 지금도 생생히 느껴진다. 나는 연락이 오는 게 특히 무서웠는데 문자라도 하나 올 때마다 가슴이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기억할 점은 단순히 검은색으로 적힌 글씨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저기서 한 깊이 더 들어가야 한다. 내 답 하나하나에 대해 상세하게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1000만 원을 들일 필요 없다. 그냥 내가 나에게 물어도 된다. 


#1 

[두려운 것] 나의 목표와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두려운 이유] 뭘 또 이루어 내야 한다는 압박이 싫어









의사와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 이때 중요한 것은 아래의 세 가지이다. 나와의 첫 대화를 나눌 때 꼭 기억하자.


1. 내 생각의 바닥을 찍고 오기 : 마치 말꼬리를 잡듯 내가 답한 내용에 대해 나에게 다시 묻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목표다

2. 구석구석 문제 찾기 :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서 혹시 바꾸고 싶은지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게 첫 단계이다. 

3. 나를 응원해 주기 : 괜찮아 할 수 있어를 꾸준히 외쳐주는 의사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다시 또 해보자.


#2 

[두려운 것] 새로운 사람 만나기 

[두려운 이유] 내가 어떤 직업인지 말해야만 하는 게 싫어



#8

[두려운 것] 존중받지 못하는 것

[두려운 이유] 나는 너를 존중하고 아껴주는데 너는 나한테 왜 그래?라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남






내 마음속 깊은 바다 
가장 어두운 바닥까지 다녀오자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왜 두려워하는지 혹시 내가 두려워하는 이유 중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나와 이야기를 나눠보자. 내가 바꾸고 싶은 내 생각의 회로들을 발견해 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이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말을 했을까? 어떤 위로를 건넸을까? 나를 위로주려면 일단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시 내 사고방식에 이상한 것은 없는지 내 마음의 바닥을 보고 와야 한다. 


비싼 선생님이라 한정된 시간밖에 대화를 나눌 수 없어서 세션이 끝나고 혼잣말로 이런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중요한 건 말로 직접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만 말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우리의 뇌는 바보다.
귀로 들어오는 건 모두 남의 말이라고 인지한다.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입 밖으로 내어야 더 효과적으로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조용하게 샤워를 하면서 이야기해도 괜찮다. 입 밖으로 나에게 물어보자. 나와의 역할극. 내가 평생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통해 나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밝혀보자. 나 스스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묻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이를 궁금해해주진 않을 것이다. 적을 알아야 대책을 세우듯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알아야 그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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