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가 준 '척'의 교훈
제가 좋아하는 부대찌개를 만들어 봤습니다. 요리를 할 줄 모를 때, 부대찌개가 먹고 싶은데 마땅히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음식점에서 파는 것처럼 진한 맛이 나지는 않지만 제법 만족스럽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데, 왜 진작 요리를 배우지 않았을까 후회가 됩니다. 어쨌거나 꽤 만족스러웠던 식사였던 것 같습니다.
아주 우연히 시작한 요리이지만 저는 요리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제가 하는 요리는 요리라고 하기에도 무안한 수준이고 솜씨도 그렇게 빼어나지 못합니다. 그저 가족들과 한 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라고 할 수 있죠.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요리를 정식으로 배워 본 적이 없고 그저 인터넷으로만 배웠으니 실력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겠죠. 하지만 제가 요리를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비록 '야매'로 배운 것이긴 하지만 요리를 하는 동안 저는 최고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요리 자체가 즐겁기도 하고,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것만큼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지면 뿌듯한 성취감도 느낍니다.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제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때입니다. 가족들이 제가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면 제 뇌에서 도파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좀 더 일찍 요리를 배우지 못한 걸 안타까워할 때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젊은 시절에 요리의 즐거움을 알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요리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죠. 그랬다면 제 인생은 지금과 완전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를 준비하다가 박찬일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쯤 같은 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친구로 기억되는데, 30년 후에 다시 만나니 요리사가 되어 있더군요.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주 잘 나가는 요리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리딩 그룹에 속해 있는 것 같고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는 처음 잡지사 기자로 근무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다가 기자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일을 찾다가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잡지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공부를 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토종 재료를 응용한 독특한 메뉴를 개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는군요. 말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하지만 막연히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니겠죠. 아마도 요리에 끌린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친구가 요리사가 되었으니 이처럼 큰 반전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성공한 요리사가 된 걸 보면 그의 선택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친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진작에 요리에 관심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나온 갈래길을 돌아보며 다른 길로 갔더라면 더 좋은 현재가 펼쳐져 있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겠죠. 누구에게나 가지 않은 길은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법이니까요.
모르긴 해도, 제가 보다 젊어서 요리에 관심을 가졌더라도 저는 아마 요리사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저는 주위 사람들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었으니까요.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젊었을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지금은 요리사가 최고의 직업 중 하나로 인기가 높지만, 제가 젊을 때만 해도 요리사는 못 배운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하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 중식의 최고 대가라고 하는 이연복 셰프는 배를 곯아가며 허드렛일부터 시작했다고 하고, 허세로 유명한 최현석 셰프도 고졸 출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요리사라는 직업이 오래전에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이었죠. 물론 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는 깔고 갑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온 제가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었더라도 그 길을 택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제 자신의 욕심도 있었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삽니다. 그 가면의 이름은 '척'입니다. 있는 척, 배운 척, 잘난 척, 고상한 척, 힘들지 않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친한 척, 자상한 척, 친절한 척, 이성적인 척, 겸손한 척, 교양 있는 척 등. 그리고 때로는 그 가면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힘든 상황에서 힘들다고 드러내면 덜 힘들 것을, 힘들지 않은 척하며 숨기다 보면 더욱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드러내면 홀가분해질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느라 곤란해질 때도 있습니다. 교양이 부족하면 채우면 그만이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힘이 들게 마련입니다. 아마도 제가 요리사가 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잘난 척'과 '고상한 척'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은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면을 쓴 상태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죠. 삶이 행복해지려면 쓰고 있는 가면부터 벗어던져야 합니다. '척'하는 것만 벗어던질 수 있다면 삶의 무게가 훨씬 더 가벼워질 텐데, 그리고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질 텐데 우리는 그 가면을 벗어던지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주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눈을 벗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네요.
그런 면에서, 요즘 젊은 분들을 보면 용기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고 여겨지면 주저 없이 그만두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그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만일,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 번쯤은 도전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눈치 보지 말고 말이죠. 시간이란 한 번 지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하면 언제 그 일을 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고단한 삶의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길 간곡히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가면을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내가 평생을 바쳐서 좋아할 수 있는, 그 일을 할 때면 최고의 열정을 발휘할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일부터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비로서 그 길을 선택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부대찌개]
(재료) 햄, 소시지, 베이컨, 구운 콩, 묵은지 약간, 콩나물, 두부, 버섯, 당면, 떡, 황태
(양념장) 고춧가루 3큰술, 고추장 1큰술, 진간장 2큰술, 국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맛술 1큰술(양념장은 국물의 양에 따라 가감하셔야 합니다)
당면과 떡은 미리 찬물에 담가 불려 둡니다.
양념장을 준비합니다.
물 4컵에 다시 멸치와 다시마, 황태, 표고버섯 등을 넣고 끓여 육수를 내줍니다.
웍의 가운데 콩나물을 넣고, 준비한 재료들을 빙 둘러 넣어줍니다.
그 위에 미리 준비한 양념장을 얹고 푹 끓여 냅니다.
당면과 떡은 불에서 내리기 2-3분 전쯤에 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