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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은우 Apr 14. 2019

가슴에 든 멍과 인생의 자유

멍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만큼의 자유가 찾아옴을 잊지 말길...

나이가 든 탓인지 꽤 오래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말을 듣지 않았다. 처음에는 팔을 올리기 조금 불편한 정도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등이 가려워도 팔이 올라가지 않으니 긁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팔을 비틀어 등 뒤로 돌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고, 심지어 왼쪽 어깨 위로 팔을 올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짚는 것만으로도 마치 망치로 있는 힘껏 어깨를 내리치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전달되어 견딜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좋아지겠거니 하고 지내다 보니 증상이 점점 더 악화되었고 더는 견딜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치료를 위해 이곳저곳 병원을 전전했지만 다들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몇 달을 허송세월 한 후,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싶어 하는 수 없이 수술을 하기로 했다. 십여 년 전에도 비슷한 증상으로 수술을 한 후 좋아진 경험이 있기에 고통스럽게 시간을 끌기보다는 차라리 수술로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수술은 별 탈 없이 잘 끝났다. 신경을 누르고 있던 어깨의 뼈를 잘라내는 수술이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하지만 마취가 깨고 난 후 보니 수술 부위에 엄청나게 큰 피멍이 들어 있었다. 짙은 초록색 같기도 하고 검은색 같기도 한 멍이 흉측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대신에 수술 전에 비해 거짓말처럼 팔을 움직이기가 수월해졌다. 한 마디로 팔의 자유도가 높아졌다. 비록 외형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멍 투성이의 흉측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이전에 비해 말할 수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팔을 보고 있자니 신기할 정도였다. 몇 달 정도 더 지나면 멍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자유로워진 팔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수영을 시작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수술 후에 남겨진 멍 자국]


시퍼렇게 멍이 든 팔을 바라보다가 문득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생은 기쁨이라는 산 정상과 슬픔이라는 계곡 사이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살다 보면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기쁨은 삶에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슬픔은 상처를 남기고, 상처가 난 자리에는 멍이 들게 마련이다. 속살이 드러날 정도로 깊은 발톱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며칠이면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살짝 생채기를 남기기도 하지만, 한 평생을 살면서 가슴에 멍 한 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상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물게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상처는 그만큼 삶을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몇 년 전, 잘 나가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꽤 오랜 시간 힘들어했다. 자존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했고 무기력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1년 반 동안 내 가슴에는 무수한 상처와 멍이 들었다. 산산이 부서진 자존심을 끌어 안고서 울분을 참아야 했던 내 가슴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수술 자리에 남은 멍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깊고 큰 멍이 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상처가 아물고 나니 그 상처의 크기만큼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지고 깊어진 느낌이 든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던 모든 집착과 조바심, 욕심도 모두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처 입기 전의 나에 비해 상처를 이겨내고 난 후의 나의 모습은 나를 옭아매던 온갖 구속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한층 더 성숙되고 깊어진 느낌이랄까?


[시간은 모든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가장 뛰어난 만병통치 약이다. 출처 : pixabay.com]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지금 몹시 아플지도 모른다. 인생의 최저점을 지나며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아픈 사람이 자신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 숨을 쉰다는 것이 고통일지도 모른다. 삶의 의욕도 잃고 살아야 할 의미를 찾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비록 지금은 아프더라도,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크나큰 멍이 들지라도, 그것을 이겨내고 나면 삶이 한층 자유로워질 수 있음도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의 오른팔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던 멍이 나의 팔을 자유롭게 만들어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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