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 나선 장수와 넘어야 할 두 관문(2)
첫 번째 관문 출판사
전장에 나선 저자가 첫 번째로 넘어야 할 관문은 출판사이다. 출판사는 책을 찍어 냄으로 해서 경제적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상업적 목적을 가진 집단이다. 1인 출판사가 됐든 규모가 큰 출판사가 됐든 ‘대한민국 지식산업의 발전에 대한 기여’라는 숭고한 목적 이전에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이 존재한다. 숭고한 목적만으로 자본을 까먹으며 책을 만들려고 하는 출판사는 없다. 그러므로 출판사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저자의 글이 충분히 상업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이다. 최근에 에세이집을 내고 싶은 생각에 몇 년간 써 놓은 원고를 정리하여 출판사에 투고하였다. 그 중 한 출판사가 글이 꽤 공감가고 좋다며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왔다. 당연히 출판계약을 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 출판사는 출판을 거절했다. 시장을 뚫고 들어갈 마케팅 포인트를 찾지 못한 것이다. 비록 글이 좋다 할지라도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다면 출판사는 매출을 우려할 것이고 출판을 포기할 수 있다.
대상 독자층이 누구인지, 그 규모는 충분할지, 그 독자들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일지, 영업이나 마케팅 측면에서의 소구점은 명확한지 등이 출판사의 주요 관심 사항이다. 저자는 이러한 물음에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출판사에서 할 일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물음에 저자가 쉽게 답할 수 없다면 출판사에 발을 들여놓기도 어려울 것이다.
내가 운영했던 책 쓰기 강좌에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 뒤늦게 합류했다. 이미 전체 일정의 반 정도를 소화한 상태에서 참여했기에 글의 주제를 정하는 단계를 건너뛸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이 분은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가 명확했다. 중학교 수학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반적인 접근 방법이 아닌, 보다 창의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독자는 중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것도 딱 찍어서 2학년. 한 번 생각해보자. 중학교 2학년을 담당하는 수학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만든 책이 얼마나 팔릴까? 전국의 중학교 수를 3,500개라고 하고 한 학교당 수학 선생님이 4분 정도 계시다고 해보자. 3,500이라는 숫자는 최근 발표된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조금 후하게 산정한 수치이다. 그러면 대상 독자의 수는 3,500 X 4 = 14,000명이다. 그 대상자 모두가 책을 사서 볼까? 그렇지 않다. 구매하는 선생님들의 숫자를 전체의 10%만 잡아보자. 그러면 팔릴 수 있는 책의 숫자는 1,400권에 불과하다. 이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낼 때 보통 초판은 2,000권 내지 3,000권 정도를 찍어낸다. 초판이 다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고 한다. 2,000권을 찍어서 기껏해야 1,400권이 팔린다면 출판사에서는 책을 펴내려고 할까?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손해 볼 것이 뻔한데 말이다.
그분이 내 강의에 처음 왔을 때 여기저기 원고를 투고해봤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말을 했다. 그 원인을 찾고 싶어서 날 찾아왔던 것이다. 문제는 원고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상 독자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데 있었는데 이 분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만일 이 분의 책이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이 진급해 올라오고 수요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의 정석』 같은 책은 벌써 반세기를 두고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책은 한 번의 수요로 끝날 수밖에 없다. 선생님들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 바뀐다고 해봐야 그 비율이 얼마 되지 않으니 재구매가 일어날 수 없다. 초기에 팔리는 1,400권이 전체 수요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러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더더욱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그 선생님께 대상 독자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선생님이 대상이 아니라 학생, 혹은 학생을 가진 부모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수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분 역시 이러한 나의 조언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처음부터 방향을 재설정해 원고를 전면 수정하기 시작했다. 독자가 바뀌면 책의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원고를 다시 쓰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든 작업도 없지만 그 선생님은 묵묵히 나의 조언을 따랐다. 결국 그분이 쓴 책은 과학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모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고 머지 않아 세상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만약 그 선생님이 대상 독자층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그의 글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책을 쓰고 싶은 예비 저자들의 상당수가 그 선생님처럼 대상 독자층을 잘못 선정하거나 특정하지 못한다. 특정한다고 해도 그 숫자를 헤아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책을 써 놓고 보면 누구나 다 볼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한 독자는 자신이 쓴 글을 소개하면서 25만부가 팔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을 봤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종에 있는 사람과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하면 그만큼은 팔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은 뒤집어 놓고 보면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읽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저자만의 착각이고 희망사항일 뿐이다.
책의 성격에 따라서는 독자층이 세분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떠한 책들은 독자층이 분명히 구분된다. 이것을 명확히 정해야 한다. 내가 가장 최근에 쓴 『나는 회사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는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의 직장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했다. 독서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취약한 세대이다. 책을 거의 안 읽는 사람들이다. 책 살 돈으로 술 마시는 사람들이라 책을 내면 안 팔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에서는 책을 내기로 했다. 대상을 바꾼 것이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영자나 인사담당자를 독자로 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자기 계발보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경영자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읽혀도 괜찮은 책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차원의 단체 주문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고 출판사에서도 그런 측면에 마케팅 포인트를 맞추었지만 아쉽게도 출판사 측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 스스로는 내가 쓴 책 중 가장 좋은 책이라 여기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참으로 아쉬움이 많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출판사가 관심 있게 보는 또 하나의 요소는 기존 도서와의 차별성이다. 이 이야기는 앞서 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두 번째 관문 독자
출판사를 넘었다면 다음은 독자라는 관문을 뚫어야 한다. 독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유를 해보자. 요즘 지역마다 축제가 꽤 많아졌다. 그중에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물고기를 잡는 행사도 있다. 여름에도 있고 겨울에도 있다. 물고기 잡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는 대가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길 기대한다. 그물을 들고 물속에 담갔다가 꺼냈을 때, 혹은 얼음 위에 구멍을 뚫고 낚싯대를 드리웠을 때, 물고기가 잡혀 올라오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아무것도 걸려 올라오는 것이 없다면 허무함과 짜증만 남을 것이다.
독자는 비유하자면, 15,000원 - 요즘 평균적인 책값 -이라는 돈을 내고 저자가 쓴 책이라는 연못에서 그물질을 하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쓴 글을 보며 열심히 그물질을 하면서 살찐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싶어 한다. 열심히 그물질을 해도 물만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건져 올려지는 것이 없다면 화가 날 수 있다.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것 때문에 축제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심정을 헤아리고 글을 써야 한다. 내가 쓰는 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을지, 독자들은 내 글을 보면서 어떤 지혜, 어떤 노하우,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내 책을 읽었을 때 어떤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 글은 일기가 되고 만다. 저자는 책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얻을 수 있지만 독자는 아무것도 건질 게 없는, 그야말로 돈이 아까운 책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 글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아내기 힘들다. 이런 글을 우리는 일기라고 부른다. 이건 책으로 낼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일기장에 써야 마땅하다. 이런 책은 그 누구의 관심도 호응도 얻을 수 없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얻고 싶은 것
독자는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있다. 첫 번째는 흥미나 재미이다. 소설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웹소설이나 로맨스 소설 등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두 번째는 지식이나 지혜, 깨달음이다. 채사장이 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시리즈나 각종 전문서적, 내가 쓴 『처음 만나는 뇌과학 이야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성공, 더 나은 수입, 더 나은 성과나 성취를 이루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스킬이나 노하우, 실천 방안 등을 다룬 책이다. 즉 자신의 삶을 현재의 모습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담겨있길 바란다. 『말 그릇』, 『신경 끄기의 기술』, 『불행 피하기 기술』, 『당신의 뇌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등의 책이나 경매, 부동산, 주식, 재테크 등을 다룬 책들이 이러한 범주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책을 통해 지친 삶에 대한 위로나 위안, 편안함 등을 얻고자 한다. 김난도 씨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이기주 씨의 책 『언어의 온도』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책들이지만 독자들은 그 안에서 따뜻함, 위로, 상처 받은 삶에 대한 어루만짐 같은 것을 얻는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나 법륜스님, 혜민스님이 쓴 책도 마찬가지다. 그 책들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힘들고 지친 삶에서 그 책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요즘의 자기 계발서들은 대체로 이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 반드시 독자가 건져 올릴 수 있는 물고기를 풀어놔야 한다. 하루 종일 힘들게 물질만 하고 빈 그물만 건져 올린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이 날 수밖에 없고 그 책은 분명 외면받고 말 것이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책을 읽는 행위는 저자가 정성스럽게 가꾼 과수원을 거닐며 맛있게 익은 과일을 따먹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물고기가 됐든 과일이 됐든 독자들은 분명히 요구하는 것이 있다. 저자는 반드시 그것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자신감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고 나서는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터득하거나 자신감이 높아진 느낌을 받아야 한다. 경매에 대한 노하우를 얻고 싶다면 책을 읽은 후에는 경매에 대한 실천적 지식이 쌓여야 한다. 조바심에 관한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조바심을 치유할 수 있는 노하우가 쌓여야 한다. 책 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 혼자서 책을 쓰고 투고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독자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일기요, 돈벌이 수단이나 과시의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니즈 파악의 어려움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독자들의 욕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언어의 온도』를 다시 예로 들면, 누구도 자신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고 대놓고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달라는 사람도 없다. 그러한 것은 말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러한 느낌을 받는다. 절제된 듯하면서도 세련된 문체, 그 사이사이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니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것처럼 가슴속이 훈훈해진다.
독자들이 입으로 밝힌, 겉으로 드러난 요구는 빙산의 일각처럼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그 아래에는 드러내지 않은 잠재된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부분을 찾아내어 건드려주면 독자들도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 것이다. 책을 한 권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가슴속에 따뜻한 불꽃 하나가 지펴진 듯한 느낌이 든다면 어찌 그 책을 외면할 수 있을 것인가?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읽기를 권하거나 선물을 하게 되고, 그것이 퍼지고 퍼져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구매자와 독자
책을 구매하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은 아이들 스스로가 구입을 결정하기보다는 부모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먼저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본 후 좋다고 여기면 자녀에게 추천을 한다. 혹은 그 역할을 선생님이 하기도 한다. 이것도 독자를 고려할 때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앞서 중학교 수학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책을 쓰겠다고 했던 수학선생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타깃 독자층이 너무 협소하기에 제안했던 것 중 하나가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책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만약 부모가 그 책을 읽고 창의적인 사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책은 자연스럽게 부모들 사이에서 화두가 될 수 있다.
책 쓰기 강의에 찾아온 또 한 분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율학기제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이 자율학기제를 어떻게 시행하는 것이 좋을지를 알려주는 글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첫 번째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학생들이 그 책을 사볼까?’ 학생들은 시간이 없다. 스스로 책을 사서 읽는 일도 드물다. 대부분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권해서 읽는다. 그렇다면 자율학기제에 관한 책은 학생들이 대상이 아니라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대상으로 써야 한다.
한 달에 두 번씩 뇌과학 스터디를 무료로 진행한 적이 있는데 초창기에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찾아왔다. 중학생으로서 뇌과학을 공부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에 어떠한 계기로 찾아왔느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생일선물로 내 책을 선물해 주었는데 그 책을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뇌과학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지금은 한국에 없지만, 이렇듯 좋은 책은 부모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쓰는 책의 독자를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보다 그 책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려하고 그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시대적 트렌드의 반영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시대적 트렌드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션에 유행이 있는 것처럼 책에도 유행이 있다. 자기 계발서를 예로 들자면, 예전의 자기 계발서들은 도입부에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식으로 위기를 조장하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 독자는 부족하다고, 그래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구석으로 몰아 부친 후, 마지막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앞서 위기감을 느끼고 잔뜩 겁에 질린 독자들은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보며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안도감을 느낀다. 자기 계발 작가들에게 따르는 신도 수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인간관계는 느슨해지고 있으며 개인주의와 변화에 대한 피로감 등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이다. 예전의 자기 계발서를 아무리 따라 하려고 해도 삶의 여건이 그리 녹녹지 않으니 꼰대처럼 꾸짖고 훈계하는 옛날 방식의 자기 계발서에는 흥미를 잃게 되었다. 게다가 삶의 질, 삶에서의 만족감, 삶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태가 확산되다 보니 옛날처럼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너 정말 그대로 살다 죽을래?’라고 다그치는 글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요즈음에 등장하는 자기 계발서를 보면 ‘사람은 바뀌지 않아. 있는 그대로 살아. 대신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볼래?’ 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애써 힘들게 네 스스로를 바꿀 필요 없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대로 살되 조금만 생각을 바꾸거나 관점을 바꾸면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요즈음의 자기 계발서의 트렌드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혹은 『혼자 잘해주고 상처 받지 마라』등의 글들이 그런 경향을 나타낸다. 책을 쓸 때는 이러한 트렌드를 읽는 것이 중요하다.
『관찰의 기술』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의 내용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관찰’이라는 키워드가 당시 유행을 탔기 때문이었다. TV에서 셜록홈스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관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에 마침 『관찰의 힘』이라는 아마존의 베스트셀러가 번역되어 들어오면서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운 좋게 내가 쓰던 글이 관찰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로 인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책을 쓸 때는 최근 트렌드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트렌드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관찰을 잘하는 것이다 – 우선 내가 쓴 『관찰의 기술』부터 사 보시라! -. 무엇보다 서점에 자주 나가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서점탐방이다. 자주 서점에 나가서 요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이 어떤 것인지, 제목은 어떤 식으로 짓는지, 책의 디자인이나 형태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떠한 책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만약 이게 귀찮아서 하기 싫다면 이제 이 책을 덮고 게임이나 하시라. 그리고 두 번 다시 책을 쓰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마시라.
이러한 변화들이 책의 유행에도 반영되는데 지나치게 짧은 유행에 초점을 맞추면 책의 생명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책을 열심히 준비해서 세상에 나올 때쯤 되면 그 유행이 사라질 수도 있고 차가운 반응이 돌아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이 그림을 책상 앞에 붙여 두고 하루 세 번 공복마다 바라보며 되새겨보라. 그러면 더욱 좋은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