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드라마는 내심 바라지만 쉽게 일어나지 않는 판타지를 가공하여 관객에 내놓는 관객 맞춤형 스토리입니다.
삶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좋은 휴먼 스토리를 얻을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ㅡ 오기환 <스토리: 흥행하는 글쓰기>
오기환의 작법서를 읽다가 가슴이 찌릿했다. 아무리 드라마가 세상에 없는 판타지라지만, 세상이 그만큼 각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흔히 말하는 관용적 표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살 만한 세상'의 살 만한 세상은 점점 멀어지는 걸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아이유에게 보낸 선의는 막연한 판타지일까?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의사들은 정말 현실에 없는 존재일까?
출처: 넷플릭스 <나의 아저씨> 홈페이지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선의는, 여러 사람이 연대하는 선한 영향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보여준 일화가 있다.
주말에 571원 피자 기사를 봤다. 코로나 때문에 실직한 한부모 가장이 7살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통장 잔고를 살펴봤더니 571원뿐이었다고. 아버지는 피자가 먹고 싶다는 딸을 위해 피자 가게 사장에게 부탁을 했고, 청년 사장은 선뜻 피자 한 판을 무료로 보내주었다. 그런 연유로 사장은 고객들에게 돈쭐이 나고 있다는 먹먹하고 울컥한 기사였다.
목적 없는 선의를 지켜보며 나의 선의를 돌아봤다. 먼저 나를 일으켜 세운 선의.
7살 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수레형 유모차에 2살 쌍둥이를 싣고 정신 나간 사람의 모습으로 동네를 훑고 다녔다. 다행히 딸은 동네 세탁소에서 차분히 앉아 있었다. 세탁소 사장님은 딸이 놀라지 않도록 상냥하고 차분한 어조로 딸에게 엄마의 연락처를 물었고, 그 전화는 나에게 걸려 오고 있었다.
"아이가 참 똘똘하네요."
내가 세탁소 안으로 뛰어들자마자 사장님이 건넨 한마디. 애엄마가 제정신이냐, 정신을 어따 팔고 다니냐, 이런 추궁의 어조가 아니라 딸을 잃은 엄마와 엄마를 찾는 딸 두 명의 마음을 동시에 누그러뜨리는 위안의 언어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골백번 고개를 수그리고 나서 세탁소를 빠져 나왔다. 몸은 나왔지만 마음은 한동안 그 문장에 매여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너무 자책하지 마." 마치 황망했던 나를 다독거리며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아서 나는 주저 앉았던 몸을 쭉 일으켜 세웠다. 지금도 가끔 이 문장을 꺼내 읽는다.
선의는 다양한 형태의 모습으로 여전히 내 삶을 깊이 파고든다. 인도를 벗어나 도로로 뛰어들려는 철부지 3살 아기의 손을 탁 잡아준 것도 모르는 얼굴(중년 여성)이었고, 수레형 유모차 바퀴가 탈착되어 언덕길에서 끙끙댈 때 나 대신 유모차 손잡이를 잡아준 것도 모르는 얼굴(20대 여성)이었다.
나는 그 모르는 얼굴들만 떠올리면 눈물이 왈칵 터지기 일쑤인데, 이유는 그 사람들이 모르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울컥. 빠직. 가슴에 또 구멍이 난 것처럼 삐걱거린다.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그렇다. 나쁜(?) 사람들, 왜 자꾸 사람을 울게 만들어...
반대의 경우도 가끔 있다. 내가 선의를 뻗친 경우. 그들에겐 내가 모르는 얼굴일 때다.
6호선 지하철역을 지나는데 어느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쓰러지셨다. 에스컬레이터 진입로에 있는 날카로운 부분에 머리를 부딪치셔서, 피가 솟구칠 정도로 부상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굣길 아이와 함께 걷던 나는 힘겹게 지혈을 하는 (남편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 곁에서 119 신고를 했다.
피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고, 119 대원의 지령에 따라 아이의 손수건을 덧대 지혈을 도왔다. 웅성웅성. 모르는 얼굴들이 할머니 일행을 둘러쌌고 긴박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신고했어요?" 그렇다는 말에 모르는 얼굴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모두가 행동하는 사람들이었고, 그중 구경꾼이라고는 없었다. 누구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누구는 인간 바리케이트를 치고 또 누군가는 멀찍이 서서 놀란 얼굴로 울고 있는 내 아이를 달래주고 있었다.
"아가, 걱정하지 마. 엄마는 지금 도와주고 계신 거야."
모르는 얼굴들의 선의가 종으로 횡으로 끈끈하게 묶이는 와중에 119 구급차가 도착했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무사히 옮겨졌고, 모르는 얼굴들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다시, 571원의 무게를 생각한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50원짜리 하나, 10원짜리 둘. 종이뭉치보다 가벼운 571원이 얼마나 무겁게 다가왔을지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청년 사장의 선의와 돈쭐 내는 선한 영향력이 스며든 그 통장의 주인은 지금쯤 아! 살 만한 세상이구나, 하고 가슴이 뜨뜻해졌을 거라는 거. 그리고 그런 뜨뜻하고 뭉근한 마음들이 모여서 세상에 온기를 꾸준히 지필 거라는 거.
어쩌면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막연한 판타지가 아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우리가 곧 드라마니까!
모르는 얼굴들은 실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