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을 차로 지나치는데 교보문고 글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모르는 사람에게 좀 더 친절해야지. 좀 더 선의를 가져야지, 라는 생각을 할 법한데 좀처럼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늘.
이 단어만큼은 마음에 선명히 박였는데 의식의 흐름은 엉뚱한 데로 향했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이 아닌 아는사람의 그늘로.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인이든 뉴스든 에세이든 여러 경로를 통해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숱하게 접한다.
그 그늘을 읽고 때로는 탄식하고 때때로 행동하며 모르는 사람이 그늘을 허물고 볕을 쬐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그리고 가끔은 모르는 사람을 응원하는 내 자신이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자족감까지 누린다. 사실 응원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어서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은 쉽다.
그런데 아는 사람의 그늘은 다르다. 어렵고 무겁다. 그 그늘을 읽기가 더럭 겁이 난다. 차리리 몰랐으면 싶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괜한 농이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때로는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다. 아는 사람의 그늘은 읽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짊어져야 해서 그렇다.
유형 A - 나와 아주 가까운 A는 가끔 우울한 얼굴을 한다. 하지만 차마 괜찮냐고 물어볼 수가 없다. 왜 그런 얼굴이 되었는지 너무 잘 알기에 그저 오늘 하루 어땠냐고 시덥잖은 말만 건넬 뿐이다. 혹시나 그 사람이먼저 옛날 얘기를 끄집어 낼까 봐 조마조마하면서.뭐라면서 위로해야 할까 힘껏 고민하면서.
유형 B - 엄마는 외려 그늘을 숨기는 편이다. 엄마와의 물리적인 거리 200km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내가 엄마의 그늘을 읽게 되는 시점은 그 그늘이 서서히 걷힐 무렵이다. 엄마가 지네에 물려 응급실에 갔다는 사실도 한 달 후에 알았고,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퇴원 두어 달이 지나서였다. 그늘을 감추는 이유는 아무래도 자식이 걱정할까 봐 걱정되어서겠지?(반전: 지네 사건은 쪽팔려서였다고 한다; 남들한테 얘기하지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미안, 엄마..지못미)
유형 C - 기승전내얘기만 하는 나의 유전자는 아빠로부터 물려받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빠는 그늘을떠벌리는 스타일이다. 감기 걸리셨다고 골골골, 누군가 당신을 해코지하면 괄괄괄. 물론 나에게 직접 말하시진 않지만 쓰리쿠션 삼단콤보로 내 귀에 들려오게 되어 있다. 그럼 난 아빠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바마마 화이팅, 이라고. 그러면 활자도 없이 방긋 웃는 이모티콘 하나만 띡 보내는 아빠의 클라쓰란..
가만! 묵직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왜 코믹으로튀었지? 엄마아빠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라고 부모 탓을 해보면서 유형 D로 다시 진중하게 넘어가본다.
유형 D - 내가 그늘을 드리운 경우. 입사 5년차 때 치기 어린 도발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보도국 모두가 보는 뉴스룸에서 직속부장에게 대거리를 한 것인데, 당시엔 정당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처럼 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당시 나의 태도엔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없었던 듯했다. 존중의 화법을 배제한 채 날선 감정들로 선배의 속을 긁었으니 그 사달이 날 법했지. 아주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제대로 사과를 드렸다.
"선배, 제가 그때 미쳤었나 봐요. 그때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행히 선배는 외려 자기가 잘못해서 미안했다며 역사과를 하셨다. 훈훈(?)하게 정리는 되었다만, 그때 후배가 드리운 그늘 속에서 그 선배가 얼마나 상심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여튼 아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은 두렵지만 해내야 하는 일이고, 내가 그늘이 되는 일은 수시로 막아야 하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그늘을 읽을 일이, 그늘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로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모르는 척회피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는 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