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맘껏 좋아하기로 했다

셀프 반성

by 김뚜루

친한 지인 A가 퇴사를 한다길래 같이 밥을 먹었다. A는 막상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밥을 먹는데 나 혼자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다(비말은 안 튀김^^). 코시국 엄동설한에 회사 밖으로 나서는 A가 걱정돼서였다.


"지금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잖아. 다들 퇴사하더라도 계속 셀프 브랜딩을 한대. 그래가지고..(주절주절)"


그런데 문득 주말에 본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라 스스로 흠칫했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만능 백수 홍반장(김선호)치과의사 윤혜진(신민아)에게 던진 그 말이 내 맘에 콕 박혔었나 보다.


그쪽은 본인이 잘났다고 생각하지?
인생이 아주 탄탄대로였겠어.
아, 물론 시련도 있었겠지.
어쩌다가 덜컹 하는 방지턱 같은 거?
고작 그거 하나 넘으면서
역시 의지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어
그랬을 테고.

이 대사가 나온 배경은 이랬다. 한물간 가수 오춘재(조한철) "내가 한때 이런 앨범을 낸 사람인데요" 하고 혜진 앞에서 으스댄다. 혜진은 그런 춘재를 한심스럽게 여기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속마음은 마이크를 통해 마을회관 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공개방송된다. 춘재는 과거의 영광만 붙드는 자신의 모습에 현타가 오고 쭈그러지게 되는데.


그런 춘재가 안쓰러운 홍반장은 그 잘난 치과의사에게 한바탕 퍼붓는다. 역시 의지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인생이라는 거 그렇게 공평하지가 않아. 평생이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인 사람도 있고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어. 알아들어?


맞아. 인생은 그렇게 공평하지가 않지. 세상엔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훨씬 많은걸. 내가 성공 경험 몇 개 가졌다고 해서 A 너도 나처럼 (의지를 갖고 죽어라 하면) 성공할 거야, 따위의 얘기를 늘어놔선 안 되는 거다. 다행히 A에게 그런 말을 뱉기 전이었고, 나는 김선호의 주옥 같은 명대사를 상기하며, 내 아가리를 셀프 봉인해버렸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하든 당신은 잘할 거라고.
지금처럼 쭉 행복하길 바란다고.


다시 드라마 얘기. 나중에 혜진은 춘재를 찾아가 사과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음악을 들었다고. 그중 A곡은 별로였는데 B곡은 진짜 좋았다고. 그 말을 들은 춘재의 얼굴은 기쁨으로 부풀어 오른다. "아, B곡이 좋으셨구나" 하고. 나는 그 얼굴이 그렇게나 애틋했다. 내가 나를 마음껏 좋아하게 되는 그 순간이..!!


그 순간을 빼앗지 말아야지. 그런 순간을 뺏기지도 말아야지. 내가 나를 마음껏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너를 마음껏 좋아할 권리가 있으니까. 우리가 우리를 힘껏 사랑하는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삶이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일지라도 얼굴에 기쁨이 스며드는 날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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