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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Sep 03. 2021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

하고 싶은 마음

퍼스널 브랜딩 하는 법, 성공하는 콘텐츠 만드는 법 등등.

한 달간 온갖 방법들이 나에게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 역시 콘텐츠 좀 만들어봤다고 힘껏 '-하는 법'을 지어댔고, 다른 사람들의 비법은 무엇인지 애써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끼적일수록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뭐라고? 내가 무슨 정답이라도 돼? 반면 타인의 담벼락을 기웃거릴수록 뚜렷해졌다. 아, 애매한 재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기껏해야 저들 언저리에나 서겠구나, 결코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겠구나, 하고.


솔직히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걸로 반드시 책을 내야지,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드라마 대본 습작을 시작할 때만 해도 반드시 데뷔해야지, 하는 확고한 방향성이 있었다. 그런데 점점 확신이 뭉그러졌다. 어쩌면 나는 원하는 자리에 닿지 못하겠다, 하는 불신이 마음을 잠식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시터 이모님의 한마디에 으끄러졌던 마음이 팔라닥 다시 부풀어올랐다.


이모님: 회사 쉬는 날이라면서요. 어디 가요?
김뚜루: 글 쓰러 카페 가요. 틈틈이 드라마 대본 쓰는데.. 계속 공모전 떨어져요. 하하..

이모님: 와, 부럽다!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어디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실컷 해요.
김뚜루: !!!!!!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어디야...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어디야...

그 말에 수굿했던 몸이 쫙 펴지는 거 같았다. 그래,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어디야! 난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인데. 잘 못하면 어때. 하고 싶은 마음. 글 쓰고 싶은 마음. 그 글을 나누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거였다. 얼마 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지인이 남기고 간 말이 스쳐갔다.


"그래도 너는 좋겠다.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좋은 거구나, 그 마음은. 하고 싶은 마음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 달가운 손님이었구나. 그 마음이 나에게 찾아와줘서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마음아.


에세이스트든, 드라마 작가든, 유명 기획자든 그 어떤 타이틀을 달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쓰는 것만으로도, 그 삶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니까.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로서가 아닌 문인으로서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제자 황상에게 그런 말을 하셨다. 자고로 복에는 화끈한 '열복'마음을 닦는 '청복'이 있는데, 사람들은 화끈한 열복만 찾는다고. 그런데 황상이 열복이 아닌 청복에 마음이 끌린다고 하자, 다산은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게 열복의 삶이라면, 주변의 작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은 청복의 삶 아닐까. 하고 싶어서 하는, 쓰고 싶어서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청복의 삶을 그득그득 누리시길. 아니,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도 훨씬 이전부터 청복의 삶을 누리고 계실지도.  =)



책 <삶을 바꾼 만남> 중에서 / 저자 정민

권력을 손에 쥐고 장안의 미희를 옆에 낀 채 호기를 부린다. 거칠 것이 없고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이 화끈한 열복은(熱福) 오래가지 않는다. 꼭 중간에 꺾이고 끝이 안 좋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청복(淸福)은 욕심을 지우고 마음을 닦아 맑게 살다 가는 삶이다.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거두고, 자연 속에서 내면을 응시한다. 마음 맞는 사람과 소박하게 왕래하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한다. 참으로 복된 삶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화끈한 열복만 찾는다. 목숨을 걸고 이 길을 향해 달려간다. 덤덤한 청복은 무슨 재앙처럼 여긴다.



나는 행복한 사람


* 행복하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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