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를 가끔 들춰보는재미가 깨알같다. 봉인되어 있던 열세살의 순간을 들여다보는 게 즐거워 또 꺼내 읽는데 나 왜 이렇게 똘끼(?)충만했음?ㅋㅋㅋ
태어나 열세 번째로 맞이하는 어버이날 전날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나도 꽃을 산 모양이다. 아마도 카네이션이었겠지? 근데 꽃을 사고 나니 용돈이 똑 떨어졌나 보다. 선물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은 솟구치는데 돈은 없고. 그러자 어린 뚜루의 기발한 발상! 선물 대신에 '이것'을 드리기로 하는데.
바로 면류관ㅋㅋㅋㅋㅋ (순간 지저스 크라이스트가쓰시는 그면류관인 줄?)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아빠 머리에, 또 하나는 엄마 머리에 씌워 드리겠다는 강렬한 포부를 뿜어내고 있었다.면류관은 조선시대 왕들이 정복에 갖춰 쓴 예모를 뜻하는데, 아마도 어린 나는 돈이 없으니 가내수공업으로 어버이날을 발라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던 거 같다ㅋㅋㅋㅋ
면류관. 출처는 SBS 육룡이 나르샤
다음날 계획이 성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정작 어버이날 당일에 엉뚱한 내용이 쓰여 있는 걸 보면 면류관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 거 같기도 하고?
코봉이 여사(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이런 답장이 왔다. (둘이 서로 북치고 장구치고 아주ㅋㅋㅋ)
또 다른 일기에선 쪼끄만 게 ○○을 노골적으로밝히기까지 하는데. 제목은 엄마의 구두.
얼룩이 묻고 기스가 난 엄마 구두를 보게 되었다. 힘들어 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구두를 닦기로 하였다. 구두약과 구둣솔로 칠해놓으니 새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중에는 칭찬도 받았다.
좋아. 여기까진 좋아. 그런데 다음 문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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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현금을 받진 못했지만!
.....응? ㅋㅋㅋㅋ 그래. 어린이인데, 용돈 바랄 수 있지.근데 웬 현금? 어린 나의 어처구니 없는 자본주의자 면모에 한바탕 웃었다. 웃겨서가 아니라 너무 황당해서ㅋㅋㅋ
옛날 일기를 끄집어내 읽다 보면 웃고 울고 꺽꺽대고어느 새 오만상이 되는데 마지막엔 꼭 이 생각을 하며 표지를 덮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