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상처와 마주보기

'따'

by 김뚜루

나는 겁쟁이다.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끄집어내 활자로 옮기는 사람인데, 나는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두렵다. 실명으로 독자를 만나는 에세이스트보다는 경험을 극화한 드라마 작가(지망생)가 내 성정과 더 맞는다는 생각이 요새 부쩍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경험들이 갑자기 빗장을 뚫고 솟을 때가 있다. 애써 외면하고 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부유하면,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하게 된다. 더 정확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열일곱'의 얼굴을.



몇 달 전에도 열일곱의 마음이 일렁였다. 을 꿨기 때문이다. 얼마나 내 심장에 깊숙이 박였길래 십수 년이 지나서도 네 꿈을 꿀까. 네가 언제 나를 놓아줄지, 내가 언제 나를 놓아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도 나는 괜히 카톡창에서 너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확대해 보고, 웃는 너를 가만 지켜보곤 한다. 웃고 있는 너에게 넌지시 묻곤 한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우리는 오총사였다. 끈끈한 다섯이었다. 16년간 서로의 존재도 모르던 소녀들이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서로에게 엉겨붙어 하나인 존재가 되었다. 선생님이 판서를 하는 동안 시덥잖은 이야기뿐인 쪽지를 서로에게 퍼나르며 낄낄대다 교실에서 쫓겨나곤 했고, 쉬는 시간엔 함께 매점으로 달려가 샤니 빵을 먹을 것이냐, 삼립 빵을 먹을 것이냐로 옥신각신했다.


쫄보였던 내가 수업 중 첫 땡땡이를 칠 수 있었던 이유도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이다. 부잣집 친구네 집에 놀러가 생전 처음 비데라는 것을 보고 돌아와 반성문에 온통 비데 얘기만 적어냈던 일, 사복으로 갈아입고 대학 교정에서 대학생인 척 캠퍼스 분위기를 만끽했던 일, 막 제대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담임 선생님에게 달려가 손을 맞잡아드렸던 일 등등 진득한 추억들이 우리 안에 쌓여가는 시간들이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같이 땡땡이칠 친구들이 있어서, 같이 혼날 친구들이 있어서, 같이 웃고 울고 깔깔댈 친구들이 있어서 매일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어쩌다 어긋난 것인지 모르겠다. 오총사라는 덩어리가 갑자기 박살났다. 완벽한 숫자였던 54대 1로 쪼개진 최초의 지점이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 하나가 있다. 중간고사인가 기말고사 직후라 교실 안이 한껏 들레던 때였다. 오총사 중 한 명인 A가 갑자기 나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솔직히 기분 나빠.
네가 26등이고, 내가 29등인 게."


나는 삽시간에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 학창시절 내 전부였던 오총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요지인즉 땡땡이 치면서 똑같이 놀았는데 어떻게 내가 자신보다 3등 앞설 수 있냐는 논지였다. 반 26등과 29등, 사실상 꼴찌에 가까운 둘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3등의 격차가 끈적한 우정을 앞지를 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얼마 후. A와 나머지 세 명이 나를 에워쌌다. A가 불만 같은 것들을 쏟아내며 뭐라고 따지던 입 모양은 기억나는데 그 문장은 세월에 풍화되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는 것. 내가 4대 1의 1이 되었다는 것.


그때부터 지옥 문이 열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따'라고 불렀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