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그녀들>과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승승장구를 지켜보고 있자니 자꾸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다. 훗, 축구? 라떼는 말이야.
#1998년
축구선수랑 일일 데이트하려고 오디션까지 봤다, 이 말이야.
나의 라떼 축구는 '여자 축구'나 '하는 축구'와는 전혀 관련없는,'덕질 축구'였다. 좀 더 엄밀히 따지자면 축구선수 덕질. 당시 나는 축구선수고종수에게 미쳐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강력한 왼발 슛팅으로 내 가슴을 출렁이게 만든, 안 잘생겼는데 잘생긴 고종수는 중학교 1학년 14세 소녀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내 학교 가방엔 고종수 뱃지, 다이어리엔 고종수 사진, 벽에는 고종수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다. 그야말로 인생이 온통 '고꾸'(고종수 꾸미기)였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KBS 프로그램인 'TV데이트'에서 고종수편 출연자를 공개 모집했다. 일반인 출연자가 단 하루 스타와 데이트한다는 설정이었는데, 나는 내심 '이러다 나중에 고종수랑 결혼하는 거 아냐?'라는 불경한 상상을 품으며 대전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14살의 나홀로 첫 장거리 외출이었다.
당시 연예인급이었던 고종수의 인기. 출처 K리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여의도로 이동하는 동안 공개 오디션에서 보여줄 비장의 '장기'를 떠올려봤지만 도무지 건질 것이 없었다. 그래, 무난하게 노래와 춤으로 가자. 신나라레코드쯤 되는 가게에서 가수 김현정의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무한반복으로 듣고 흥얼거렸다.
"믿지 않았쒈. 그녀의 일방적인 얘기들. 나를 쏙이며. 그동안 만나왔던 얘기도."
둠칫둠칫. 지하철 안에서 자진모리 비트로 세차게 입을 놀리며 어깨춤을 들썩이는데 뭇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가 바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그지하철 X호선인가?'라고 생각하는 눈빛들. 그때 서울에 사는 이모가 내 곁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날 지하철 빌런이 될 뻔했다.
KBS 'TV데이트'. 출처 유튜브
KBS홀 앞 광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프린팅 티셔츠로 고종수를 입고 온 사람부터 얼굴에 고종수를 칠하고 온 사람까지 진정한 고종수 덕후들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디 면접을 보러 가듯 단정한 베이지 치마에 흰 블라우스 차림이었다. 아, 안 돼. 이런 걸로 저들을 이길 순 없어. 처절한 위기의식을 느끼던 찰나, 밑에서 삐질, 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에 소스라쳐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고 그것이 '초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 곁에 있던 이모의 발빠른 조력으로 무사히 상황 종결.
고종수와 데이트할 단 한 명을 가리는 경연은 비교적 단순하게 거행됐다. 1차 오디션은 고종수에 관한 OX 퀴즈. 이미 고종수왕조실록과 고종수피디아급 정보를 탑재한 나에게 OX 퀴즈는 가볍게 몸을 푸는 수준이었다. '아니, 고종수 팬이라며 저런 것도 몰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해 점점 미세한 질문으로 넘어가는 동안 백여 명의 탈락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덧 덩그러니 남은 사람은 수십 명. 드디어 2차 오디션이 시작됐다.
14년을 살아오면서 그와 같은 위기의식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자신들을 '황금박쥐'라 칭한 고등학생 언니 둘이 박쥐처럼 날아와 무대(?) 중앙에 안착하더니 '어디, 어디, 어디에서 날아오나, 황금박~~~쥐'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진짜 살아있는 박쥐 두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계속 퍼드득거리며 무대를 종횡하는 언니들의 퍼포먼스에 심사위원은 물론 좌중의 표정도 결연해졌다. 요즘말로 (무대를) 찢었다! 그런 언니들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고 믿었다. 난 내 목소리를 믿으니까. 그리고 내 차례가 왔는데...
"뭘 보여주실 건가요?" 진행을 맡은 개그맨의 질문에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이요"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자신감은 빌어먹을 라떼 정신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라떼는 말이야, 초등학생 때 중창단을 했다, 이 말이야.'
첫 소절을 부르고 조금씩 조금씩 무대를 쌓아가는데, 이제 클라이막스인 '하지만 나의 마지막 기대마저도...' 이 부분을 파워풀하게 부르기만 하면 되는데...! 돌연 얼음, 내 몸이 굳고 말았다. 진행자는 나에게 마치 비장의 무기라도 있는양 또 뭘 보여주실 거냐고 들렌 소리로 외쳤지만 비장의 무기따윈 없었다.
"가사를 까먹었어요..."
인생 첫 오디션이자 마지막 오디션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렇게 터덜터덜 패배자의 걸음으로 빠져나가던 나에게 갑자기 작가 언니가 손짓을 했다. "너 몇 살이니?" 이게 말로만 듣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그 상황인가 싶어서 반색하며 답했다. "14살이요." 혹시 모를 기대감에 점점 부풀어오르는데 돌아온 대답은 그래, 고생했어, 이 한마디였다. 나는 예정대로 좌중 속으로 들여보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탈락자 대열에서 한참을 곱씹다가 이게 다 어쩌면 고종수 때문인지도 몰라, 하필이면 인기 많은 축구 선수를 좋아해갖고는, 하는 근본 없는 결론을 내리고는 그날로 고종수 탈덕의 길로 들어섰다. 급격한 단절 선언이었던 셈이다. K리그가 열렸던 대전시티즌 홈구장에서 대전시민 주제에 고종수의 수원삼성을 응원하며, 지역정서를 무참히 짓밟았던 나는 오디션을 계기로 서서히 고종수와 멀어져갔다. (나중에 TV에 출연한 황금박쥐 언니들을 보았는데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고종수의 말 한마디에 볼이 불그죽죽해지는, 영락없는 여고생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2001년
라떼는 말이야. 남들 다 2002년 월드컵에 열광할 때 말이야, 난 2001년부터 '붉은악마'였다 이 말이야.
17살 여름. 싱그러운 계절 속 싱그러운 나이였다. 나는 월드컵 공식 응원단인 붉은악마(Be the Reds)의 정식 멤버였다. 내가 속한 조직명은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지만) 붉은악마 대전지부쯤 되었던 것 같다. 월드컵이 치러지기 1년 전이라 전국 곳곳에서 평가전이 치러졌고, 나는 대전지부의 버스에 올라타 방방곡곡 원정 응원을 다녔다.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건 물론이요, 목에 빨간색 수건을 둘렀고 얼굴엔 태극마크를 새초롬하게 그려넣었다.
경기장 안에선 되지도 않는 복식호흡으로 사자후를 토하며 응원했고, 경기 직후엔 승패와 관계없이 사람들과 빙 둘러선 채 말 그대로 ('탐탐이'라 불렀던) 북치고 장구치며 신나게 난장을 벌였다. 월드컵은 아직 멀었는데 우린 이미 월드컵 축제 중이었다. 그때 경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금은 고인이 된 로티플스카이(본명 김하늘, 대표곡 '웃기네')의 얼굴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모두가 열정적이었고, 초록초록했던 그해의 청춘들. 그 사람들은 알까. 여기, 누군가가 당신들을 근사한 여름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