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무실을 옮겼다. 2층 보도국을 떠나 5층 사회공헌국으로. 지난 13년간 이 회사에서 기자였다가 삼우실 작가였다가 기획자였다가 매번 새로운 업무를 맡아왔는데 앞으로는 소셜임팩트 DNA를 추가하게 될 거 같다. 5층아, 잘 부탁한다. 그런데 이 5층에 온 첫날 뜻밖의 환대를 받았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2.
50~60대로 추정되는 여성 환경미화원이었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라고 쓸까 하다가, 기자 아주머니나 기획자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사례가 없다는 걸 깨닫고서 그만두었다) 그는 여자 화장실에 들어선 나를 보더니 명절 때 상봉한 가족 대하듯 반색을 했다.
어머나! 이번에 새로 오셨다는?
아, 네. (어리둥절)
어머나! 잘 왔어요! 너무 반가워요.
(???)
5층 화장실 쓰는 여자분이 4명밖에 없거든요. 아이구, 잘됐다. 이제 5명 됐네. 호호호호.
난생 처음 당신네 화장실(따지고 보면 회사 화장실인데) 왔다고 환영받아보기는 처음이어서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것도 사무실도 아닌 화장실 변기칸 앞에서 격렬한 환대를 받아보긴 처음이어서 그에 걸맞은 반응을 내놓아야 할 것만 같았다.
까르르, 저도 너무 반가워요! 앞으로 똥 열심히 싸고 오줌도 콸콸콸 싸고 손도 열심히 씻을게요, 라고 대답할 순 없잖아? 대신에 나는 수줍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그분께 읊조렸다.
깨끗이 사용할게요. (진심이었다)
그분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는 듯 손사래를 치셨고 나는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어서 쑥스럽게 목례를 하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사무실에 앉아 그 미소를 곱씹을수록 사람을 진심으로 반기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그분께 화답하는 길은 앞으로 똥 열심히 싸고 오줌도 콸콸콸 싸고 손도 열심히 씻...겠다는 게 아니라 화장실에서 그분을 마주칠 때마다 다정한 언어를 건네야겠다고생각했다.
3.
기자생활 동안 유일하게 받은 상이 있다. 한국기자상(기획보도부문)과 국제앰네스티언론상, 이달의기자상, 대한언론상을 받게 해준 유일한 보도물, 환경미화원 인권보고서.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바스러져 또렷하진 않지만 화장실 비품칸 구석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마음들이 떠오른다. 대걸레 청소하는 수도꼭지 앞에서 쪽상을 차려놓고 오로지 밥과 김치에 눈을 박아두고 밥알을 꾹꾹 삼키시던 모습도 울멍울멍 떠오른다.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부디 무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