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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루 Aug 02. 2021

엄마가 되고, 처음 거부 당했던 경험

영화 <원더>의 기적

이기적인 엄마로 살기 STEP4.

시선에 맞서기


주말에 아이랑 영화 <원더>를 봤다. 선천성 안면기형으로 수십 차례 성형수술한 아이 '어기'가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극중 엄마인 줄리아 로버츠가 어기를 난생 처음 학교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데서 시작된다. 모든 스토리의 서사가 그렇듯 주인공 어기가 여러 편견과 난관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단단히 서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의 후반부, 어기를 줄곧 괴롭혔던 가해 학생의 학부모에게 학교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어기의 얼굴은 바꿀 수 없어요.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야죠."


이 말의 묵직함에 마음이 시큰거렸다. 세상엔 타인이 절대 바꿀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약자들, 소수자들, 노인, 아이 등등. 이 범주에는 분명 엄마라는 존재도 들어갈 것이다. 아무리 이기적인 엄마라고 해도 분명 엄마로서 수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이라는 게 있기에 엄마는 n분의 1의 삶을, 쪼개 쓰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라는 존재는 식당에 기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맘충이 되고, 아이와 함께 찾아간 식당에선 노키즈존이라는 팻말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람 금지!


내 눈엔 마치 이런 팻말로 보였다.

식당에선 식사 규칙을 준수해주세요,

성인만 출입 가능합니다,

이런 문구를 써도 됐을 텐데 왜 특정 연령의 사람을, 특정한 존재를 배척해야만 했을까. 서글펐다.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거부 당했던 경험은 첫째가 막 태어난 직후였다. 단조롭게 팩트만 열거하자면 우리 아이는 선천성 심장병, 정확히는 4가지 심장 복합기형이 있는 팔로사징증후군(TOF) 환아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 들어갔고, 예후가 좋아서 일단 퇴원은 했으나 결국 청색증으로 입원해 생후 88일 만에 심장 개흉수술을 받았다. 가슴 뻐근하게도 5살 때 6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또 받았다.


아이가 NICU에 있는 동안 병원 근처 조리원을 급히 알아봤다. 잘하면 엄마와 동반 퇴원이 가능하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 들은 직후였다. 몇 군데 조리원에 전화를 돌리는데 수화기 건너 들려오는 무거운 음성.


"네? 그런 아이는... 좀.. 그런데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말.

그런 아이, 라는 차별적 단어를 직접 들은 것은 너무나 생경한 경험이라 막상 아무 대꾸도 못 하고 수십 초간 얼어붙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5살 때 2차 수술을 받은 아이.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서 홀로 외로움을 견뎌낸 아이는 일반병실로 넘어와 '경례' 코스프레를 할 정도로 금세 경쾌해졌다.

영화 원더를 보는 내내 몇 번이나 눈물이 왈칵왈칵 치솟았는지 모른다. 내 이야기, 내 아이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더 넓게는 같은 병동 뇌수술을 받은 아이들의 이야기였고, 외래진료 같은 층 소아암 환아들의 이야기였다.


조금 다르게 태어났다고 해서, 조금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해버리는 세상의 시선, 세상의 편견. 사실 진짜 바꿔야 할 것은 따로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시선을 바꾸려 하지 않고 타인의 몸을, 타인의 존재 자체를 애써 부정하고 밀어낸. 그럼 이 애미는 어떻게 한다? 싸워주는 수밖에!!! (드루와, 드루와!! 내가 무에타이 2단이야, 싸람아!)


그리고 그 싸움의 시작은,

어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알고 싶다면 그저 바라보면 된다. 관심을 갖고 세밀히 관찰하면 된다. 벽에 붙어 자라는 담장꽃, 이 아니라 능소화라는 정확한 이름을 불러주면 꽃에 생기가 살아나듯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재를 인정하면 편견은 헐거워지고 무뎌질 것이다. 엄마에 대한 박한 시선도 그렇게 서서히 허물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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