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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화상 Feb 12. 2022

웹툰 리뷰_방백남녀, 인간관계는 모든 행복·고민의 근원

인간관계에서 진심 어린 소통의 가치를 성찰한 웹툰

https://youtu.be/OzCaD88h8tk


방백남녀인간관계는 모든 행복과 고민의 근원

인간관계에서 진심 어린 소통의 가치를 성찰한 웹툰

2022년 2월 12일     


영화 「기생충」에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전부 실패해버린 기택이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계획을 하면 절대로 계획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아무 상관 없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인생의 쓴맛을 느낄 일도 없듯이, 인간관계도 애초에 맺지 않는 것이 윤택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2016년 미국의 자살 원인 1위는 인간관계(42%)였다. 한국 또한 청년층이 학교, 군대, 직장 등 단체 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 우울증과 자살의 원인은 주로 인간관계의 비중이 컸다. 결국,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N포세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을 늘 신경 써야 하기에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표현했으며,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인간관계를 ‘모든 행복의 근원이자 고민의 근원’이라고 정의했다.     


서투르기만 한 관계의 어려움     


2019년 완결한 「방백남녀」는 꿈이 좌절된 남자와 가족과 친구 관계에서 불화를 겪은 여자가 서투르지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사회초년생의 성장을 그린 웹툰이다. 작품의 특징은 작가 본인의 체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몹시 사실적이어서 공감하기가 수월했다는 점이다. 민남주가 축구선수 생활을 하며 느끼는 고충이나 은어, 여주혜가 시달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함께 영화 장면이 오버랩되는 연출처럼, 독자들도 자신의 인생 한 편이 오버랩됐을 것이다.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실수를 저지른 흑역사가 있을 것이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기껏해야 한두 살 차이 나는 선배와 격 없이 편하게 말하던 버릇 때문에, 대학 입학 후 나이 차가 꽤 나는 선배에게 말실수한 경험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해진다. 외에 오랜 친한 친구와도 당장 따지기 어려운 사소한 문제들이 하나둘 쌓여 폭발하기도 하는 등 인간관계란, 어느 정도 사회생활에 정착한 지금까지도 생소하고 또 서투른 개념이다.     

이는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워낙 다원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몇십 년을 함께 한 가족조차 성격 차이로 마찰을 빚는 마당에 처음 접하는 인간과 원만하게 지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방백남녀」는 이런 속성을, ‘방백’이라는 장치를 통해 잘 나타낸다. 본의와는 다른 말로 타인에게 상처와 오해를 주고, 사적인 문제와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데에서 생기는 왜곡을 주인공들의 속마음을 통해 묘사했다. 그리고 이 방백을 통한 심리묘사가 치밀해서,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핑퐁과 삽질이 유쾌했다.     


사회초년생의 아픔을 담은 민남주     


기껏 마음을 터놓고서는 술에 취해 여주혜에게 진상을 부리는 모습은 흡사 웹툰 「찌질의 역사」의 민기를 떠올리게 했다. 별다른 잘못도 하지 않은 여주혜가 먼저 용기를 내 손을 내밀었지만 이를 매몰차게 뿌리치는 모습에서 아연실색해버렸다. 이처럼 「방백남녀」는 서로의 아픔을 쉽게 표현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트라우마로 인해 그와 무관한 타인에게 역으로 상처를 주는 인간관계의 복잡다단함과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그려낸다.     


학창시절은 꿈을 준비하는 단계이자, 꿈을 접게 되는 인생 최초의 실패와 굴욕을 겪는 시기이다. 게다가 당시는 재능 없이 노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경쟁이 가능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고부터는 서로의 재능이 부각되면서 자격지심을 느끼고 나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꿈을 포기하는 것을 떠나, 성인이 되어서도 진로의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청년이 부지기수이다. 나이는 이미 성인이지만, 자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되기란 참 여의치 않다.     


학생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경제적 의존 상태이기에, 부모의 기대와 요구를 떨치기 쉽지 않다. 민남주 역시 머리로는 무리임을 알면서도 굴욕을 감내하며 이 악물고 버텼지만, 결국 굴복해버린 인생 최초의 실패라는 트라우마로 인해 전역 이후에도 환청에 시달려야만 했다. 게다가 사회초년생 때는 사회 진출 시기가 다를 수밖에 없어서, 주변인과 비교되는 열등감, 여유가 없어 생기는 초조함, 불안감이라는 늪에 허우적거린다.     


그래서 앞날이 막막한 청년들은 나의 꿈을 좇기보다는 그저 막연하게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고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얄팍하고도 미성숙한 내면으로는 도전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꿈을 좇다 좌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능의 부족함도 작용했겠지만, 바로 인간관계, 집단과 그 구성원의 부조리로 인한 억울함도 컸었다는 것을 민남주의 사연에서 공감했으며, 우리 또한 여러 조직 생활에서 느끼곤 한다.     

관계의 불화로 자기 혐오에 빠진 여주혜     


처음에는 백새별에 얽힌 에피소드 등 외모지상주의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나 싶었다. 학창 시절에는 특히 예민한 시기니까 말이다. 나 역시 「방백남녀」의 섬네일이 끌리지 않아 한동안 기피하기도 했듯, 인간에게 시각적 정보란 그 어떤 감각보다 중요도가 높아, 옳고 그름을 떠나 살아가며 배제할 수 없는 문제이다. 같은 것이더라도 디자인이 우선하기도 하고, 누구나 기본적으로 머리, 수염, 손발톱 등의 자기관리를 매일 해나간다.     


그러나 그보다 복잡한 사연이 개입됐다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무척 흥미로웠다. 조손가정이라 친구와 어울리지 못할 때 먼저 손을 내민 친구 정미주에게 느끼는 부채의식, 그러나 정미주의 독단적이고 배려심 없는 성격 탓에 빚게 되는 마찰, 다른 또래 집단과의 관계나 서열과 얽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존엄성의 훼손과 관계의 어긋남을 지켜보면서, 민남주의 선수 생활처럼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이처럼 관계에는 알게 모르게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무언가 바라고 베푼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돌려받지 못할 때의 서운함과 배신감을 어쩔 수가 없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받은 울분을, 자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토해내어 상처를 주는 아이러니함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뒤늦은 후회를 하는 장면과 후회에도 바로 잡지 않아 자기 혐오에 빠지는 것까지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다.     


여주혜가 겪은 일의 배경에는 성장기 때 중요한 부모의 부재도 한몫했을 것이다. 빈곤과 부모의 존재처럼 일상의 부재가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어릴 적 또래와 어울리면서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고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 여주혜의 할아버지는 그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따뜻하고 희망찬 명작 영화들을 보여주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가혹하고 잔인한 현실의 괴리감을 실감하게 하였다.     

소중한 관계는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이처럼 「방백남녀」는 너무나 생생한 묘사로, 보는 독자들까지 인간관계의 공포에 움츠러들게 했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남주와 여주혜는 결국 어긋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고, 서로의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결과적으로 각자의 트라우마도 치유해주는 선순환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서두에 상술한 알프레트 아들러의 말처럼 인간관계로 받은 상처도 결국은 다시 인간관계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사실 여주혜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흑과 백이 아니라, 모두 회색에 해당하는 다중적이고 복수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다. 정미주도 혼자 쓸쓸하게 있던 여주혜에게 먼저 손을 내밀던 때가 있었으며, 여주혜의 부모도 가정의 우선순위가 첫 번째는 아니었지만, 결코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외에 민남주가 감독의 마음을 돌리려 했던 것이나 후배에게 사과하는 것 등 분명 노력만 한다면,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     


‘삶은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고 자신에게 가는 길의 시도’라는 책 「데미안」의 구절처럼 인생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그렇고, 누구나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는 단 한 번이 아니라 살아가며 무수히 주어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못된 선택을 만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미주와 달리, 나의 잘못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자존심을 꺾고 먼저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민남주가 존경하는 아르센 벵거의 은퇴 선언처럼, ‘소중한 추억이란, 성공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쏟은 진심이며, 그 소중함이 새 출발의 계기’가 된다. 인생,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마치 이르는 길과 같아, 간혹 엇갈려 있어도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 마련이므로 한 번의 단절로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말자. 그리고 가끔은 사랑하는 이에게 ‘방백’보다는 용기를 내 진심을 전하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주혜 “난 사과를 받지 않았다.
상처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생채기임에도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흉터라도 생긴 것마냥 굴었다.
나의 찌질한 행동에는 변명이 필요했으니깐.
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소녀여야 했으니깐….” -31화
민남주 “… 하루에도 수백 번 넘게 ‘축구를 때려치우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닭장 같은 곳에서 욕먹고 두들겨 맞는 것도 진절머리가 났다.
맘 편히 늘어지게 늦잠도 자고 밖에 있는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 날 이후에도 축구를 그만두지 않았다. 아니, 그만둘 수가 없었다.
… 내 꿈은 더 이상 나만의 꿈이 아니었으니깐.” - 33화
아르센 벵거 “매일 해오던 일, 항상 정말 잘하고 싶었던 일을 끊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죠. 모든 이야기엔 끝이 있는 법이니까요.
때때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할 때도 있죠.
제 헌신은 진심이었고 저는 모든 것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제가 이곳에 있었던 모든 순간을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이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입니다.” -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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