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한잔에서 깨달은 인생 진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새로 알게 된 브런치 까페를 다녀왔다.
브런치며 빵이 맛있다고 해서 갔는데 소문대로 브런치 메뉴가 훌륭했다.
샐러드는 싱싱했고, 파니니는 양도 많고 내용물도 알찼으며, 스프는 짜지 않고 간이 딱 좋았다.
일할 게 있어서 브런치 세트를 시켜 두고 먹으면서 일을 했다.
작정하고 일을 더 하다 갈 요량으로 식후 라떼를 시켰다.
라떼가 나왔는데, 라떼 아트는 차치하고라도 딱 봐도 거품이 쫀쫀하지가 않다.
물이 섞인 맛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마셔보니 역시나 맹탕이다. 우유 맛은 별로 나지 않는다.
녹진 고소한 커피 + 우유의 조합이 아니라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좀 더 타 준 그런 맛.
뭐 라떼 취향은 어디까지나 개취이니, 나처럼 우유가 더 들어간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우유가 덜 들어간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맛이가 별로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 라떼를 마시다 보니,
갑자기 "이 집 라떼를 마셔보기 전엔 여기가 라떼 맛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듯이, 뭐든 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혹은 맛집)만 해도 리뷰를 보고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물건을 살 때도 나보다 앞서 산 사람들의 리뷰를 읽고, 구매에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여행을 가기 전에도, 여행지에 가보면 마치 와 본 곳인 듯한 착각이 들만큼 여행 후기를 꼼꼼히 찾아보고 계획을 세워서 여행을 한다.
나는 오랫동안 리뷰와 후기 글들을 섭렵하면서 나름 진짜와 가짜를 판별해 내는 능력을 키워 왔다.
물론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렇게 미리 예습(?)하고 하는 여행은, 구매는, 맛집은 실패가 잘 없다.
나는 이렇게 실패를 경험하지 않게 된 대신, 뭔가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스쳐 보낸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너무 경험을 글로만, 영상으로만 하게 된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카페의 브런치는 훌륭하다. 스콘과 마들렌도 맛이 썩 괜찮다.
아이를 데리고 가족과 함께, 혹은 느지막한 주말 아침, 친구를 만나 브런치를 즐기러 또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 혹시 라떼를 만드는 분이 다른 분이라거나, 혹은 업그레이드 된 레시피를 사용할 수도 있으니,
나는 그때도 다시 한번 이 집 라떼에 도전해 봐야겠다.
맛없는 라떼도 한 번쯤은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떼는 잘못이 없고, 실패 없는 인생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