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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아도취 Mar 26. 2020

다정한 아침 식탁

나를 사랑하는 방법, 하나


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들었다. 6시 10분.

나쁘지 않은 기상 시간이다.

간밤에 확진자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려고 휴대폰 앱을 연다.

거기서부터 시간은 쏘아 놓은 화살처럼 흐른다.

확진자 수를 확인하려고 들어갔지만, 어디 거기서 멈추랴.

미처 확인 못한 메시지도 확인하고, 블로그며 인별그램 업데이트도 확인한다.


아이가 칭얼거리며 뒤척이기에 폰을 내려두고 토닥거리다 보니 벌써 7시.

분명 어제 잠들기 전에는 새벽 5시부터 해야 할 일 목록을 적어두고 잤는데 말이다.

아이가 폭 잠이 들 때까지 곁을 지키다가 눈 질끈 감고 몸을 일으키니 7시 15분.

지금까지 뭐 한 거지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마저도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걸 안다. 밀려드는 자괴감을 털어내며 간단하게 씻고 냉장고에서 우유 한 통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코로나19로 아이가 집에 있게 되고 나는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우리는 거처를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나의 부모님 댁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는 아침마다 부모님 댁을 나와서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한다.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대구에 살고 있기에, 주말부부인 남편은 내려오지를 못한다.

한번 내려오면 올라가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업무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공기는 분명히 상쾌할진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코에서는 아침에 양치한 치약 냄새만 맴돈다. 바깥공기를 폐부 깊숙한 곳까지 끊임없이 들이마시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잠깐이지만 바깥공기를 쏘여준 것만으로도 긍정 기운이 조금 올라온다.


어제는 저녁 식사를 거르고 사과쥬스 한 잔을 마시고 잤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은 아침을 꼭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메뉴는 무엇으로 할까? 간단히 떡국을 끓일지 아니면 엊그제 해 둔 카레를 데워서 먹을지 행복한 고민도 했다.

그런데 아침에 부슬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를 보니 스타벅스에 가서 라떼랑 스콘이 급 땡긴다.

하지만 이미 늦게 일어나서 다녀올 시간이 마땅치 않다.

결국 집에서 토스트에 양송이 스프, 그리고 과일과 라떼를 한잔 곁들여서 나를 위한 아침 식탁을 차리기로 한다.

다운된 날 기운을 끌어올리는 데는 나를 위한 따뜻한 요리를 하는 것이 제격이다.

(물론, 택배 배송으로 미리 주문해뒀던 간편식 스프가 집에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빗소리가 듣고 싶어서 부엌 창문을 열어두고,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꺼낸다.

라떼를 만들기 위해 전자레인지에 우유를 데우고, 사과를 썰어낸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켜고, 냉동실의 빵을 꺼낸다.

빵을 토스터에 넣어 데우는 동안 우유가 다 데워졌다.

우유를 꺼내고 스프를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세팅할 그릇을 꺼내고 비 오는 아침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본다.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데워진 우유는 거품을 올려서 라떼를 만든다.

스프와 토스트를 그릇에 얌전히 담고, 라떼랑 사과도 세팅을 한다.


내가 나를 토닥이기 위해 준비한 다정한 아침상이 차려졌다.

창밖으로는 빗소리가 들리고 스피커에선 보사노바가 흘러나온다.

내 손으로 만들었지만 "잘 먹겠습니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감사히, 맛있게 먹는다.


부엌에서 요리할 때 엇박자가 나지 않고 준비가 착착 진행이 될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런 날은 뭔가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차오른다.

대충 차려서 먹지 않고 손님 접대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릴 때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내가 나를 아껴주는 기분이 들어서 그럴 테다.

거기다가 오랜만에 나를 위한 아침상을 차리는데 날씨도, 음악도, 음식 준비 과정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나를 위한 아침 식탁을 차리고 보니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간혹 완벽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찰나이지만 오늘 아침에 느꼈던 완벽한 순간. 그 순간에 느낀 희열은 내가 나를 오롯이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나를 오롯이 사랑하는, 존재 자체로 행복한 그런 순간들이 모여,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들어준다.

내 손으로 차린 다정한 아침 식탁 하나에, 오늘 하루가 행복했다. 그거면 됐다.

그렇게 내가 나를 토닥이며 완벽하지 않을 뻔했던 하루를, 완벽하게 시작한다.


Table for one - 나를 위한 다정한 아침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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