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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인간.('정치'란 무엇인가?)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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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政治 : 정사 정, 다스릴 치]


1)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리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일.


나는 퇴근하면 집으로 간다. '남편'과 '아버지'의 정치를 한다. '부인'의 정치와 '딸'의 정치를 만난다.


남편으로서는 마늘이 하루 동안 겪은 사건과 경제적 성취도, 심리적 변화가 궁금하지만 익숙한 침묵 속에 '행동'만으로 유추하고 판단한다. 소통과 교섭을 하지 않으면 정보나 감정의 왜곡에 의한 호도가 일어날 것이고 만약 그에 따른 한 쪽의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한다면 양자간 권력 지형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버지로서는 딸이 학교 친구들과 잘 지냈는지, 점심 메뉴는 마음에 들었는지, 저녁에는 뭘 먹고 싶은지, 오전에 숙제는 조금이라도 했는지, 예민한 친구들과의 어울림으로 사춘기 지수가 더 올라갔는지 등이 궁금하다.

남편으로서의 정치 영역보다 아버지로서의 정치 영역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분쟁을 피하는데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딸이 사춘기 조입에 다다르자 '동토(冬土)의 확장'으로 전선의 재조정과 전략의 변화를 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반직 공무원이며 '지방 세무직 공무원'이다.

나는 기획재정부 소속 국세청 산하 일선 세무서(서대문, 용산)에서 '국가직'으로 7년 1개월을 근무했고 '지방직'으로 13년 5개월을 근무해서 총 20년 6개월 째 '공무도하가'를 애써 부르고 있다.

직급은 '6급'이고 구청 내 많은 직렬 중에 소수 직렬(5%)이며 남자(37%)이며 장애인 공무원(4%)이다.

2년에 한 번씩 정기 인사가 있어 근무처를 이동하는 국가직(국세)과 달리 같은 구청 내 70여개 과 중 3개 과에서만 순환한다. 승진한지는 오래 되었지만 조직의 구조적인 한계로 근평이나 승진에서 조금 거리가 있고 평주사 중 나이가 젊은 편인 '소장파'이다.

팀장 보직을 올해 7월에 받을지 내년 1월에 받을지에 대한 화두로 신경이 좀 쓰이는 '요즘'이다.

그러나 민원인의 입장에서 보면 직급과 상관 없이, 과세표준과 세율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고, 체납을 할 경우 재산을 압류하여 공권력을 행사하는 행정 기관의 직원 중 하나일 뿐이다. '병졸'일 뿐이다.


2)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일.


'정치'의 정의인데 1번은 우리 모두에게 통용되는 인간 일반의 '정치'이고, 2번은 인간 이반(특수)의 '정치'이다. 정치가들은 자기들을 '바보 이반'으로 불리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들이 '바보'라는 단어로 자기들을 희화화, 과소화 하는 것을 노린다.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정작 '바보'일까?

2번의 정치인들 때문에 1번의 정치인들은 '정치'라는 단어를 '혐오'하고 '거부'하려 든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이 혐오와 거부의 만연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들만의 리그 속에 더 공고하게 제대로 '절망의 굿판'을 첨예하게 오래오래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바보 이반'으로 보지 않고 '개돼지'로 보기 일쑤이다.

그들은 대중의 '무관심'을 바란다. 그래야 더 높고 깊이 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마치 '벼슬'이나 '훈장'인 것처럼 장착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수록 정치꾼들의 부패 지수는 올라가게 되어 있다.


나의 아버지는 군사 정권 시절 언론 민주화 운동의 선봉장이었던 공으로 1984년과 1988년 DJ에게 전라도 광주 국회의원 공천을 제안 받았다.

정치를 '혐오'하던 엄마는 출마를 극렬히 반대했고, 아버지는 '보도지침' 사건으로 한번 더 투옥 당한 이후 한겨레 신문사에 들어갔다.

1992년 엄마와의 이혼 후 아버지는 1995년 광주 북구청장과 1998년 광주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16대, 17대 민주당 국회의원을 두 번 했다.

기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정점을 달렸다.

두 차례의 투옥과 고문 휴유증에 따른 부작용으로 2009년 '루게릭병'에 걸렸고 2년여의 투병 끝에 2011년 쓸쓸하게 돌아가셨다.

이혼한 엄마와 그 아들 둘은 그 변신에 따른 '수혜나 이득'을 정말 조금도 얻지 못했으며,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 그 과실과 꿀은 돈만 밝히던 '머니 뱀파이어' 아버지의 '미친 재혼녀'와 나의 '이복 여동생'이 철저히 독식했다.

'머니 뱀파이어'는 아버지가 누워 있을 때 손가락 지문을 이용하여 모든 재산을 자기 앞으로 돌렸다.

내 부모의 이혼의 사유는 중층적이었지만 엄마의 정치에 대한 '혐오'와 '거부'가 네 가족의 각자의 어떤 시기들을 참으로 초라하고 헐벗게 만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이 정치인으로서의 이력을 '사적이자 공적인 이 공간'에 밝힐까 말까 고민했다.

어제 나는 닉네임을 '하니아빠'에서 '하니오웰'로 바꾸었고 앞으로 조지 오웰식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글을 어떠한 편향을 담아 가끔 쓰게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들어 밝혀 두는 바이다.

나의 방식은 언제나 '솔직'과 '정면돌파'의 편에 기울어 있다.


그래서 '정치'는 중요한 것이다.

나에게 '정치' 라는 단어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단어이다.

우리는 나의 생각이나 사상을 나의 선택과 판단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이나 언론에 떠돌아다니는 언어에 휘둘리며 그 언어들의 장난질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나의 어미도 아쉽지만 그러했다 여겨진다.


The people have leaders at his level.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정치를 '정치' 하려면 개개인이 ‘각성’ 해야한다.

정치의 동반자인 '언론'이 우리의 뇌를 자꾸 불편부당의 웅덩이에 집어 쳐넣어 절이는 수작질을 하고 있다.

정치와 언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음모론'이나 '말초 콘텐츠'에 자신의 절여진 뇌를 또 맡기기 마련인데 여기에는 오랫동안 기이한 습벽에 가까운 '자괴감'이 자리 잡아 있는 것이겠다.


게다가 개개인으로 구성된 '집단'은 이성과 자기 극복 능력,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되어 있어 개인에 비해 심각한 '이기주의'가 발현된다.

개인의 이기적 충동은 개별적일 때보다 공통된 충동으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 더욱 생생하게 표출된다.

그럴 때 '정치'가 필요하다.

개인과 개인의 사이에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조정 과정을 통해 관계의 표준이 갱신되는 반면, 집단들 간의 관계는 윤리적인 면보다 상호 간의 힘의 비율에 따라 정립되는 바가 크다.

그럴 때 제대로 작동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수 십년 간 국민을 갈라치기 하고 증오와 반목을 밑밥 삼아 자기네 덕지한 배때기 둘레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그들에게서 이제 좀 그만 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각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4년에 한 번씩 그들이 행하는 '거짓말' 쇼에 놀아주되 놀아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우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직한 것은 아니다. 보통 그들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우리는, 사람은 제대로된 '정치인'이 되어 살아볼 일이다.

무관심과 냉소로 등돌리는 동안 저들은 더 뻔뻔해지고, 정의를 가리는 장막을 더 두텁게 해가고 있다.

부디 정신 차리고 살자.


개인이든 국가든, 정신이 남에게 종속되면 '품격'과 '존엄'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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