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엄마 집에서 자게 되었다.
혼자 엄마방 서재를 살피다가 귀한 기록을 발견했다.
나의 외할머니의(홍인식, 세례명 사비나) 지극히 개인적인 구술 자서전.
제목은 '검소한 삶, 따뜻한 행복'
2018년 11월 30일에 발간한 6남매와 친한 친척들만 간직하고 있는 30부만 발행한 외할머니의 자서전이다.
막내 딸(나의 막내 이모)이 외할머니 치매가 심해지기 전 효성과 끈기로 외할머니의 육성을 녹음하여 가족들에게 남기기 위해 만든 귀한 자서전이다.
엄마를 기다리는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이 책을 발견한 것을 소중한 복이라 생각하며 나도 엄마의 육성을 많이 앞으로 꾸준히 녹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조금씩 차례대로 옮겨 보련다. 나의 외할머니의 인생의 단편들을.
[어린시절 부모님에 대한 기억]
친정 아버님은 점잖으면서도 인자한 분이셨어요. 밖에 나갔다 들어오실 때에는 마당에 서서 "으~흠" 소리를 내셨지요. 화를 내시거나 큰 소리를 내신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잘못하면 엄격하게 훈육을 하셨어요. 때론 무섭기도 했답니다. 몇 번 안 되었지만 큰 잘못을 하면 매를 드시기도 했어요. 그런 날은 장에 가서 맛있는 것을 사다가 어머님께 주시면서 애들 해 주라고 하셨어요. 동태를 사 오셔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나요. 아버님은 1남 5녀 중 막내인 나를 특히 귀여워하셨어요. 늦게 들어오신 날, 혼자 식사하실 때에는 옆에 앉히시고 노래를 부르게 하셨지요. 학교에 오셔서 교실 창문으로 공부하는 것을 들여다 보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운동회에 오셔서 구경도 하고 돈도 주고 가셨는데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했지요.
내가 어릴 때 몸이 약해 자주 아팠어요. 배앓이를 많이 했지요. 아버님은 손으로 배를 쓸어주시고 그래도 안 나으면 한의사를 불러 침도 맞게 해 주셨어요.
정이 참 많으신 분이에요. 엄격하면서도 자상하셨어요.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님께서 쓰신 글이나 사용하시던 물건을 보고 많이 울었어요. 아직도 두루마기 입은 사람을 보면 아버님 생각이 나요.
아버님은 자수성가하신 분이에요. 결혼하실 무렵엔 남의 집 곁방살이로 시작하셨다고 해요. 구장 일을 하시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셨어요. 돈관리도 잘하시고 검소하셨지요. 나중에 땅 50마지기도 사게 되었다고 해요. 아버님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세요. 좌중을 이끄는 힘이 있어 어딜 가도 중심 역할을 하셨대요.
어머님은 외며느리라 대소가 일을 다 하시고 농사 일까지 하시느라고 늘 바쁘셨어요. 생활력이 강했지요. 여장부라고나 할까? 머슴에게 농사 일을 시켰지만 바쁠 때면 함께 일도 하셨어요. 실제로 생활적인 건 다 담당하셨지요. 늘 바빠서인지 내게 자상하게 정을 주고 한 기억은 없어요. 어머님은 여자는 집안 일을 잘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어요.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버님이 중학교 시험을 앞두고 돌아가신 후 진학할 생각은 더 할 수가 없었답니다.
아버님, 어머님 두 분 다 검소하고 부지런한 분이셨지요. 두 분 중 누가 더 자상한가 생각해 보면 아버님이 더 따뜻하고 자상한 분으로 기억된답니다.
나는 이 외할머니의 글을 읽고 나니 엄마와의 식사시간 대화가 훨씬 재미가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께서 평생 자기 엄마(나의 증조 외할머니)를 미워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못 가게 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외할머니는 총기가 정말 대단하셨다.
98세로 2024년 1월에 돌아가셨는데 2022년 즈음까지는 틈만 나면 신문(조선일보)을 보셨고, 세계테마기행 보는 것을 참 좋아하셨는데 기억력이 대단하시어 손자, 손녀들이 오면 그 내용을 조금 말씀하셨는데 내용의 오차가 거의 없었다.
글이 조금 심심했지만 우리 엄마의 시작에 다가서기 위한 이만한 좋은 사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감사할 따름이다.
기록의 힘이다. 먼 훗 날 내 딸의 자식들이 나의 이 일기. 기록들을 접하고 엄마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기록은 말보다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