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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심판 선고와 동그란 공.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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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선포 후 100일이 훌쩍 넘었다.

이번 주.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탄핵에 대한 입장의 방향, 입장의 경중을 떠나 쓰잘데기 없는 증오와 반목의 각살이들이 가져 온, 측량 불가의 파고가 일으킨, 대한민국 호의 선수부터 선미까지 관통한 맥동파로 인한 엔트로피의 증가가 상당하다.

경제는 무너지고 정치는 실종 되었다.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탄핵 찬반 군중들의 함성이 향해야 하는 곳은 원래 그들의 가족과 국가 보다 훨씬 작은 범주에 대한 행복과 안녕의 달성이었어야 한다.

언제나 더 중요한 것은 속도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나 온도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던 기준이나 준거의 형틀이 깨어지고, 상식의 영점을 재조정 당하고, 추상의 영역을 다시 구체의 세계로 하향시켜 봐야 했던 100일의 과정은 국가 영역 전체의 엄청난 손실과 탈구를 가져왔다.

과연 어떠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대한민국 호는 다시 순항할 수 있을까?


전장이 아닌 곳에 진영과 진지를 구축하고 미세한 차이만 있으면 '상대를 악마로 상정하는 이 부박한 미움과 확증 편향의 시대'는 맹목의 팽배를 낳았고 선악의 경계를 해체시켜 상호 적대의 저열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총성 없는 내전은 총성 있는 외전 보다 치명적이고 깊은 비극을 낳았다.

'임박'이 '임박'했다.

세련된 ‘언론’과 교양의 탈을 쓴 ‘검찰’이(장기 임대 사업자들) 꼬까 옷을 바꿔 입는데 능숙한 ‘정치 권력’(단기 임대 사업자)과 합주한 이번 현악 3중주가 4악장의 마지막 악장 중의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다.

앵콜 곡으로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될지 ‘민중의 노래’가 울려 퍼질지 모르는 첨첨백백한 시국이다.

한 쪽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고, 다른 한 쪽의 낭자를 다시 음모할 수도 있다.


한국 호의 속절 없는 전복을 피하기 위해서는 각 쪽이 자정 작용을 통해 무게를 스스로 덜어내야 한다

개인의 지향점과 집단(타인)의 공감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해가는 과정이 필요할텐데 먼저 이 상목(傷目)을 조장하는 거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과녁을 오조준한 섣부른 시선들을 거둬들여야 참된 평화의 시절을 더디더라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상수와 변수의 대결이다.

축구장이 있고 축구공이 있는데. 사람들을 정녕 열광시키는 것은 잘 만들어진 축구장이 아니라 조그마한 축구공 하나일 것이다.

축구장을 만든 사람들이 조작한 껍데기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축구장보다 훨씬 작은 동그란 공이 굴러가는 방향과 위치, 그것을 향해 달리고 넘어지는 너와 나의 드리블들의 진정성과 절묘함이 세상과 우리를 더 매료시키는 것이다.

달리다 보면 변수가 상수가 되고 상수가 변수가 되는 것이다. 공은 주로 동그랗다.

변수, 상수 이런 것들은 일시적 분별에 의한 나눔에 불과한 것이고 지나고 나서 결국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사랑하여 따뜻하게 동그래져야 하는 것 아닐까?

부디 서로가 서로를 덜 미워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그 날이 올 때까지 두 손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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