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이쁜 딸과 손 잡고 '폭삭 속았수다'를 봤다.
2화 '요망진 첫사랑'에서 관식은 애순 앞에서 더듬거리면서도 끝까지 이 시를 씩씩하게 암송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 순간 우리 딸은 내 손을 세게 잡았다.
그것은 아직 남녀간의 '사랑'을 잘 모를 11살 우리 딸이 보기에도 따뜻하고 순수한 사랑을 뜨겁게 고백하는 무해하고도 찌릿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쁜 딸은 4회까지 내리 봤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내가 결혼을 누구와 했는지 몇 초만 미래로 순간 이동 해서 얼굴을 확인' 해 보는 상상도 자주 했다. 짝사랑 했던 숱한 여인들을 그 상상의 장에 일일이 대입해서 좀 더 길게 있어 보기도 했다.
나는 1977년생이고 광주가 고향인 아버지와 문경이 고향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중 막내이고 마늘은 1984년생이고 상주가 고향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 중 막내이다.
나는 2005년에 국세청에 입사해서 서대문세무서 징세과 정리1계에서 근무했다.
정리2계의 노계장님은 로버트 레드포드 느낌의 기품 있는 외모에 바바리가 잘 어울리며 입담까지 좋으신 깔끔한 신사 계장님이었는데 술자리와 사람을 좋아하셨다. 그 당시 2계에는 나와 발령 동기 여직원(제주도)이 있기도 해서인지 나를 그 팀 회식에 가끔 불러 주셨다. 6년이 지났다.
그녀는 2008년에 입사하여 서초세무서 조사과와 법인세과에서 근무했다. 3년이 지났다.
2011년 1월 서대문세무서 부가가치세과의 해가 떴다. 국세청의 인사 이동일은 매 년 1월이다.
나는 부가3계, 그녀는 부가1계였고 부가1계장님은 2005년 정리2계장님과 동일했다.
노계장님은 팀회식에 나를 가끔 불러주셨다.
그 당시 나는 분명한 ENFP였고, 그녀는 그 때도 ISFJ였다.
나는 그 해 우리 팀의 잘 생긴 두 남자 동생들과는 별로 친해지지 못 했다.
한 명은 너무 순수하게 착해서, 한 명은 불분명한 미끈함이 있어서 가까워지는데 한계가 있었다. 두 친구 다 180cm가 훌쩍 넘었고 상판대기가 아주 출중해서 우리 과 뿐만이 아니라 전 서의 젊은 여직원들의 선망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런 애들과 한 팀이었고 내세울 요소는 '7급 공채'라는 것 하나 뿐이었다.
물론 그딴 걸 너저분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래저래 의미가 있었던 건 부가1계였다.
남자.
성격 좋은 노계장님은 나에게 호의적이어서 회식에 자주 불러주셨다.
극E의 시절이라 마다할 이유도 주저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다른 약속과 겹치는 날은 참석하지 않았다.
팀원 모두 성격이 빠짐 없이 좋아서 팀회식을 자주 했다. 지금 꼽아 보아도 내가 소속한 팀은 아니었지만 역대 최고의 무난하고 정 많은 팀이었다.
차석(주), 삼석(유), 사석(천)까지 모두 허허실실이셨다. 7급 공채 합격 동기 두 살 위 형님(이)은 아주 프리한 스타일이서 전국구로 날아 다니는 분이었고(결국 나중에 '세원정보' 분야 통이 됨), 한 살 어린 깔끔하게 생기고 업무 능력 에이스인 동생(김)과 네 살 어린 무뚝뚝하지만 자기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한테 정이 두꺼운 동생놈(문)이 나와 합이 좋았다.
여자.
나와 같은 갈현동에 사는 세 살 어린 애가 있었는데 그 날 그 날 기분 너울이 심했지만 술을 좋아하고 순수하고 솔직한 매력이 넘쳐 지금까지도 내가 계속 만나고 있는 좋아라 하는 동생(희)이다. 그리고 다섯 살 어린 7급 공채 선배가 있었는데 마음이 참 만만디하고 순진해서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오게 하는 편한 스타일의 동생(육)이었다.
그 팀의 막내가 두 명 있었다. 나랑은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는 아이들이었다. 한 명은 이어폰을 항상 꽂고 다니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성격의 뒤틀림이 없는 쿨한 친구(장)였다.
다른 한 명(박)은 마이클 잭슨이 즐겨 입을 듯한 은빛 자켓을 자주 입었다. 오후 5시 55분 정도가 되면 터벅터벅 우리팀 쪽으로 걸어 왔다. 본인 캐비넷이 이 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고개를 30도 정도 비스듬히 기울이고 세상 다 꺼질 듯한 축 처진 걸음으로 걸어왔다.
'저 조사관은 왜 항상 저리 힘이 없지? 옷만 반짝거리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 팀의 테리우스들을 좋아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닌가? 좋아했나?
나와는 그냥 1팀과 3팀 사이의 거리. 일곱 살 차이.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1월부터 5월까지 회식을 같이 자주 했지만 나는 주로 이와 김, 문과 희랑 놀아서 그 막둥이랑은 5개월 간 친밀도가 증대된 바가 신기하게도 전혀 없었다.
서로 최량의 호칭은 그저 '조사관님'이었다.
2계에 자폐가 있는 남직원 형님(한)이 있었는데 나보다 다섯 살 위였다.
대화가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고 특유의 코를 킁킁거리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며 사람을 볼 때 길게 뚫어져라 보는 형님이었다. 자료 처리는 거의 하지 않았고 민원 전화도 제 멋대로 받다가 끊어 버리는 매력적인 형님이었다. 사람이 착하고 위트가 있었다. 음담패설을 좋아해 본인의 어떤 무용담들을 잘 풀어 내는 재주가 있어 나랑 담배를 피러 자주 같이 나갔다. 잘 지냈다.
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친분을 쌓음에 있어 상대가 문을 닫지만 않으면 편견과 경계 없이 다가가는 편이다.
1계의 김와 문은 심성이 착하고 다같이 흡연자이기도 해서 한 형과 담배 피러 나갈 때 내가 툭툭 데리고 함께 나가곤 했다. 넷이 술도 몇 번 마셨다.
그래도 아무래도 과에서 그 형님과 스스럼 없이 꾸준하게 잘 지낸 사람은 나와 또 한 명 정도 뿐이었다.
그 친구가 바로 1계의 막내 은빛 자켓 박 양이었다.
그 형님에게 사업장 현지 확인 관련 서류나 세금계산서 파생 자료 등을 나눠 줄 때도 남들처럼 사무적으로 짧게 던져 주고 도망치듯 오지 않았고 스스럼 없이 농담을 나누고 음료수가 생기면 챙겨서 갖다 주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좀 의아해 하면서 흥미롭게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5개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고 운명의 6월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