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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집회 참석과 엄마집에서의 1박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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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딸이랑 탄핵 집회에 다녀왔다.

좀 다르게 표현해 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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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는 불면증이 심해 어젯밤에도 잠을 잘 자지 못 했다.

그의 처 숙이는 어제 친구들과 읍내에서 늦게까지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절주가 건강 유지의 시금석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새벽녘 집에 들어왔고 숙취가 심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석이는 며칠 전부터 8년만에 열리게 된 큰 장터에 주말에 세 가족(석이, 숙이, 진이)이 함께 가자는 말을 했었지만 새벽 늦게 숙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숙이의 동행은 힘들 것을 직감했고 딸 진이랑만 장터에 가게 되었다.

3시부터 장터가 열린다고 해서 맞춰 갔는데 사람들이 많이도 와 있었다. 구멍 가게에서 음료수를 두 통 사들고 큰 자리를 만들어놨길래 전단지를 두 장 받아와 냉큼 앉았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옷을 두껍게 입으라는 석이의 말을 듣지 않은 진이는 추워했고 석이는 기꺼이 제 옷을 벗어주었다.

장터가 8년 만에 열리는 터라 지역 유지랍시고 어른들이 번갈아 나와 마이크를 잡는데 그 결기가 제법 대단들 하다. 이 동네 저 동네서 살펴 온 통반장, 이장들은 함께 어떤 대의를 머금은 듯 한 마디 한 마디에 크게 수긍하며 손뼉을 친다. 엠프가 고장 났는지 유독 날카로운 잡소리가 많이 났다. 진이는 초장부터 그 큰 음량에 아주 힘들어한다.

읍장이 나오자 진이는 오줌이 마렵다며 석이와 엠프에서 먼 곳에 있는 커피숍 화장실로 두 번이나 걸어 나온다. 읍장의 말이 들린다.

"오늘은. 에. 65년 전 3.15 부정선거가 있던 날입니다. 이승만의 그 폭거에 항의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들이 모여 4.19 혁명을 이끌어 냈습니다. 저희는 그 정신을 계승하여 오늘 장터를 다시 열게 되었습니다. 부디 읍민 여러분들께서도 그 위대한 혁명 정신을 기억해 주셔서 우리 장터가 다시는 깊은 역사의 공터에 내몰리지 않도록 힘을 실어주십시오. 막걸리잔 높이 들고 즐기다 돌아가시면 됩니다."

다시 돌아가 이제 장을 보려는데 아직도 엠프 색깔은 시뻘시뻘하다. 신해철 노래는 참 좋았다.

집에서 가져 온 젤리와 오는 길에 산 캬라멜이 동이 나자마자 진이는 몸을 베베 꼰다.

그래도 30분 정도 더 참는다.

"아부지 나 너무 어지럽고 다리가 너무 아파 더 있을 수가 없어요. 고만 가입시다."

진이는 어제 달리기를 하다가 삐끗하여 어제부터 다리가 아프다고 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진이는 새로 생긴 양품점을 지나치지 못 하고 들어간다.

"다리 아프다며?"

"어 근데 걷다보니 좀 괜찮아 진 것 같아."

20분 넘게 구경 하더니 집에 있는 것과 아주 딱 비슷한 빗을 하나 고른다.

"진이야. 이런거 집에 있는거 같은데?"

"아니야. 완전 다른거지. 아부지 이번 주 용돈은 이 빗 가격만큼 빼고 주이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콧노래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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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처형 집이 큰 공사를 하게 되어 큰 처형과 조카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잔다고 마늘이 말했다.

나는 저번 주말에 엄마랑 크게 싸웠는데 계속 바빠서 가보지 못 해 미안하던 차에 엄마랑 저녁도 먹고 하루 자고 가려고 갈현동 엄마 집에 와서 문자를 날렸다. 엄니랑 대화는 참 힘들다.

모자는 만났고, 엄마는 백세주 한 병을 홀딱 비우시며 연신 재잘재잘 하셨다.

경방 주식으로 돈 벌었던 얘기, 외할머니의 향학열, 현숙이 이모의 아이큐가 142가 넘어 학교에서 잠 좀 재우라고 했다는 얘기, 숙희 이모가 큰 외삼촌 이후 내리 세 번째 딸이라 증조외할머니가 외할머니 산달에 와서 외할머니한테 와서 '저거 그냥 도로 니 뱃 속으로 집어 넣어 버려라'고 말하고 가셨다는 얘기 등 끝이 없으셨다. 마음이 다 풀리신거 같아서 다행이다.

들었던 익숙한 얘기들인건 분명한데 집중해서 들으니 엄청 재미가 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건성이었는가 싶다.



울 엄마는 한 겨울에도 보일러를 넣지 않는다.

겨울에도 난방비가 사천원 나오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가 말한다.

"야 니들 설에 왔다간 뒤에 난방비가 만 팔천원이 나왔다. 호호호"

엄마는 계속 기분이 좋다. 취해서 내가 네 시간 전부터 보일러를 켜 놓은 걸 모르신다.


엄마의 사랑 덕분인지, 어제의 많은 걸음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푹 잘 잤다.

새벽 네 시경 쉬가 마려워 마루에 나갔는데 엄마가 똥을 싸고 있었다.

"내가 빨리 싸고 나갈께 기다리렴"

나는 기다리지 않고 방에 들어와서 그냥 잤나보다.

일어나 보니 아침 6시 45분. 이렇게 행복한 '미라클 모닝'이라니.


미라클 모닝 모임 루틴 독서를 하다가. 착한 남매의 이야기(오빠가 여동생을 등에 업고 유치원 버스에 태워주는 길에 노래까지 불러줬다는 이야기) 부분을 읽고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불광동 진성 아파트 살 때 형은 나가서 놀 때 꼭 나를 데리고 나갔다.

아이들이 내 걸음을 따라 걸으며 놀려도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나갔다.

집에서 죽치고 비비고 있는 것보다 그게 나았다.

아이들이 변함 없이 놀린다.

"다리 병신~ 다리 병신~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야 니네 내 동생 놀리지마. 내 동생 일부러 아픈거 아니거든?"

내가 삐쳐 있으면 형은 내게 다가와 토닥여 주고 괜히 나보고 공을 저 쪽으로 던지라 하고 내가 던지면 뛰어 가서 잡아 온다.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나는 또 벙긋벙긋. 참 착한 형이었다.

우리 형 생각에 아침부터 울컥 했다.


엄니한테 자주 와야겠다. 지금 밖에서 콧노래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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