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오후 6시 37분에 다음 날 일기 소재를 '선물'로 삼아 볼까 하여 마늘한테 카톡을 보냈다.
'내가 너 펜디 가방을 신혼 여행 때 사주고 지갑은 언제 사줬지?'
'펜디 가방은 내 돈 주고 산거고 지갑도 내 돈 보태서 산거야. 어이가 없네.'
모지? 난 분명히 사고 또 준 것 같은데.
기억력이 나보다 몇 배는 좋은 마마님 말씀이 맞을 것이다.
너의 늬에게 아무런 섭섭함이 없던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
2011년 6월 3일. 금요일.
부가1팀에서 나랑 제일 친한 두 남동생은 그 날 오전부터 부산했다.
둘은 4층 흡연실에서 그 날 저녁에 대한 얘기를 나를 옆에 버젓이 두고 그냥 나눈다.
"야 문~ 너 이따 저 형 생일 케이크 주재근 베이커리에서 살꺼야? 파리 바게트에서 살꺼야?"
"아니 형, 저 노친네 생파 해주는 것도 지랄 맞은데 케이크까지?"
"야! 안 사주면 저 형 삐져~ 한 번에 끝내자."
"야 이 잡 것들아. 주재근 껄로 해. 못 먹어도 고~"
그 날은 서대문 세무서 별관(현재 은평세무서) 건물에서 전직원 교양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두 번째 타임 교육이었고 교육은 오후 5시 40분쯤 끝났다.
나는 먼저 응암동에서 홍제동으로 택시로 이동하여 '마포 소금구이'로 향했다.
35살 노총각의 생일 축하 술자리. 나는 초장에 그 날의 꽐라를 직감했다.
6시 반이 넘어 두 명이 마저 와서 성원이 되었다.
1팀 - 이(75), 김(78), 문(81), 희(80, F), 박(84, F)
2팀 - 한(72), 심(81), 석(81), 선(86, F)
3팀 - 쑥(77), 오(80), 애(81, F)
당초 멤버에 없던 84년 생 박 F.
교육장 뒷정리를 마치고 가장 늦게 온 78년 생 김 군이 녹번에서 홍제로 택시로 넘어 오던 길에 우연히 산골고개 초입에서 그녀를 발견해 데리고 온 것이었다.
터벅터벅,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짠했단다.
김 군이 물었다.
"야 너 쑥 형 생일파티 갈래?"
"나 안 친한데? 오빠 그리고 나 지금 갈 기분이 전혀 아니야."
"안 친하니까 가자. 그 형 사람 좋아. 그 인간 사람 많은거 좋아해. 너가 재밌어 하는 한 형도 있어."
박 양은 합류했지만 술 맛이 잘 나지 않았다. 1차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희 언니가 한 마디 한다.
"야. 빡! 너 언니랑 소찬휘 땡기러 가야지? 지금 가려고? 미친거야?"
둘은 노래방만 가면 소찬휘의 '현명한 선택'을 부르는 걸걸한 디바들이었다.
주량도 노래 취향도 솔직한 성격도 비슷해 둘은 인사 이동 하자마자 제일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 박 양은 그 날을 회상하며 쑥 반장이랑 안 엮일 수 있었는데 두 양반(김, 희) 때문에 망했다고 자조하곤 했다.
우리는 자주 가던 짱가 노래방으로 향했다.
지하 룸으로 내려가는데 오늘 주인공이라는 쑥 반장은 안 그래도 다리가 불편한데 양 쪽에서 부축을 받고아 계단을 뉘엿뉘엿 내려간다.
퍼진 아저씨는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대 자로 뻗어 누워 버린다. 가까이서 제대로 보니 참 못 생겼다.
노래방에 가니 기분이 좀 살아났다. 내친 김에 서문탁의 '사랑 결코 시들지 않는...'도 불러 제꼈다.
50분 쯤 지났을까? 구석에서 쳐자던 쑥 반장이 정신을 차린다. 문 오빠가 선곡책을 던진다.
"어이 노친네! 노래 좀 부르고 정신 좀 차려봐. 아직 8시 밖에 안 됐어~!"
어머머. 더듬거리며 일어난 쑥친네가 노래를 부른다.
김동률의 '이방인'을 부른다. 그 명곡을 다 망친다. 목소리는 야비했고 꽉 찬 비음이 참 역겨웠다.
쑥 반장은 노래를 부르기 싫어 했는데 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자꾸 노래를 더 부르라 한다.
술을 더 깨야 3차를 갈 수 있다며.
쑥반이 이문세의 '소녀'를 부르는데 감미롭지가 않다. 왠 비장미를 장착했다. 웃는 모습이 비루하진 않다.
사람들이 좋아하긴 한다. 원래 평판이 괜찮았는데 오늘에야 좀 그 못난 얼굴을 제대로 봤다.
1차 때 불나방처럼 달아 올라 개시끄럽다가 정신을 잃어 세상 모르게 디비져 있더니 또 부활을 해서 노래를 부른다. 싸이코라더니 정말 제대로인 것 같다.
3차는 '호랑이와 곶감'으로 갔다. 나도 기분이 많이 좋아져서 희 언니랑 엄청 마셔댔다.
나는 신나면 그냥 끝나는 사람이다. 어느새 남은 사람은 4명 뿐이었다.
희 언니랑 나, 쑥반이랑 김 오빠 뿐.
밖으로 나오니 또 쑥 반장은 비틀, 나도 비틀......
너무 어지럽다. 쏠린다. 참을 수가 없다. 나올 것 같다. 나는 신속히 비틀거려 쓰레기통을 잡았다.
'나온다. 에헤라 디야 속이 편하다. 미명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나의 손 위에 그의 손이 '쑥' 덥혀 있다.
그 놈도 쓰레기의 다른 한 쪽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토하지는 않았다.
산골고개 높은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 간다.
아빠가 내가 2008년 국세 공무원 교육원에 석 달 동안 들어가 있을 때 감쪽 같이 이사 해버린 이 꼭대기 집은 기가 막힌 비극이다.
이런 날은 정말 더 지랄맞다.
힘겹게 씻고 누웠다.
나는 3팀에서는 이성적 감정은 아니었지만 '오' 오빠를 제일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은 혼몽한 와중에 주인공이랍시고 삼단 변신을 일삼았던 쑥 반장이 어른거린다.
'이거 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