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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아빠의 99번째 일기(금주 예찬)

by 하니오웰



나는 2024년 12월 21일부터 금주를 시작했고, 44일 차까지 금주일기란 제목으로 일기를 써왔다.

44일 차 일기 제목이 '일기 쓰기의 좋은 점'이었다.

그 날 이후로 '금주'란 단어를 뺐다. 아마 그 무렵부터는 술자리에 가서도 술의 유혹에 동요가 일지 않았던 것 같다. 66일이 지난 이후의 시간은 덤이었다.


나는 평생 간혹 일기를 써왔는데 매일 쓰기 시작한 것은 2024년 12월 21일부터이다.

금주의 여정에서 주도적인 입각점은 '일기 쓰기, 글 쓰기'였고 나는 이제 '조금 잘 하는 것을 계속 하고 싶은', '추상에서 구체로의' 목표가 생겼다.

금주가 가져 온 가장 좋은 점이다.

오늘이 99번 째 일기다. 일부러 그저께 일기를 쓰지 않았으니 금주한지 100일 째 되는 날이다.


...겨울보다 밤이 늦게 다가오고, 더 짧게 머무는 계절이다.

햇볕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딱딱한 땅은 재채기를 하며 기지개를 편다. 봄에는 노란 색, 하얀 색, 연분홍 색 꽃들이 힘을 낸다. 하룻밤 사이에 마술처럼 풍경을 변하게 하는 것은 주로 봄의 꽃들의 몫이다. 담은 빛깔만큼 우리에게 제각각의 부드러운 벅적임을 준다.

나른해지기 시작한 햇빛과 흙이 제 몫의 청신한 냄새를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나는 28년간 잔을 채워 올렸다. 나의 잔은 봄을 업수이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번 봄은 내 핏줄에 꿈틀대는 충동과 나태에의 쾌락에서 좀 벗어나 있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죄의식과 함께하지 않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나의 인사를 피하는 듯한 사람을 만나면 이제 '혹시 어젯 밤 내 망태기 꼴을 본 건 아닌가?' 라는 에먼 상상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술'과 인연을 맺은지 28 년을 훌쩍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신새벽 단잠을 깨우고 마는 숙취에 얄밉다가도 노을 지면 그리워하던 그 녀석의 실체가 이제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술에 대한 실효적 의미와 주관적 거리를 깊이 가늠해 보기 시작한 것은 마흔 중반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리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까치발로 다니는 나의 발가락들이 순서를 바꿔가며 통증으로 아우성 쳤고 앞 발바닥의 굳은 살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 하고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통곡하고 싶은 공포가 나를 스쳤고 술자리에서 그런 이유를 대어 안 마시려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타의보다 자의가 주로 숨겨두었던 잔을 다시 건네주었고 나는 주저 없이 움켜 잡았다.

2022년 4월 '아킬레스건과 무릎' 수술 후 6개월 정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효능감을 느낄 여력이 없었다. 그 당시의 메인 테마는 '금주'가 아니었고 '재활'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 복직 후 빠르게 다시 예전의 행태로 돌아갔고 두 여자는 냉소와 체념을 더했다.

빈도와 음주량을 줄였지만 두꺼운 변곡점은 오지 않았다.


2024년 8월. 와이프가 세무사 개업을 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지방 세무직으로 옮겨온지 11년이 되었지만 나의 국세 인력풀은 좀 남아 있었다.

국세인들과 약속을 많이 잡고 부어댔다. 엔믹스 노래는 좋았지만.

이 자주 보였다.

도움을 주지 못했다.

로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2024년 9월. 2022년 수술 당시 박았던 철심을 빼는 수술을 했다.

2024년 12월.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2024년 12월 어느 날. 각자의 숙취의 새벽. 마루에서 마늘을 만났다. 둘 다 전 날 술 약속을 소화했다.

마늘은 나보다 약속이 더 잦을 수 밖에 없었다.

"오빠. 이게 다 뭔가 싶다. 몸과 마음만 버려가는 것 같아."

"미투. 나야말로 이제 술약속 안 잡아. 잡힌 건 어쩔 수 없고."

2024년 12월 21일 밤 9시 41분 부터 금주를 시작했다.


금주의 좋은 점들을 들어 그를 조금 예찬해 볼까?

1. 소비가 줄어든다. - 책 값의 비중이 늘어난다.

2. 관계의 '새로고침' - '술'에 집중하던 소수의 사람들은 이제 좀처럼 내게 연락하지 않는다. 유쾌하다. 다수는 그대로이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여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형성 되어가고 있는데 건강하고, 깊고, 긍정적인 지향의 사람들이 많다.

3. 글쓰기의 꾸준함 - 글쓰기는 삶을 '겸손'하게 대하게 한다. 그것은 나를 차가운 바닥으로 내던지는 작업이다. 낮은 자세로 나를 되돌아 보며 세상을 올려다 보아야 진짜 글이 나온다.

스스로에 대한 진정한 응시와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를 계속 길어 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글쓰기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간추림과 정리의 과정'이 된다. 그것을 매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행복이다.

이제 글쓰기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글쓰기 주제는 나의 성장과 가족의 역사, 인간에 대한 고찰, 선과 악에 대한 포폄 등에 가닿아 있다. 내가 앞으로 써나갈 그 다양한 주제들로의 유영에 대한 기대로 조금 설렌다.

4. 일정한 일정함의 유지 - 더 이상 속과 머리가 쓰려 일어나지 않는다. 금주의 장점이라 일컬어지는 '수면의 질'의 상승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 부호이다. 다만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시작이나 어떠한 꾸준함에 나를 던질 수 있다. 시간이 조금 더 내 편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5. 딸이 좋아한다. - 두 말 하면 잔소리다.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 새로운 가능성으로의 도전은 우리의 혼을 타오르게 한다. 삶 자체는 끊임없는 출발들의 총합이다. 그 출발은 수없이 많은 알 수 없는 것들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고 그 만남들이 우리에게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나의 금주가 금단의 열매를 따는 여정으로 끝나지 못할지라도 나는 금주로 얻어진 명징한 새벽들에 의미를 더해갈 것이고 그 새벽들의 투명한 직립이 나의 공중 누각에 의미 있는 '공허' 이상의 형체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멈출 수 없을 것 같던 나의 '채움과 비움'을 조금 옆으로 밀어 보니 '후회 보다 기쁨이', '그늘보다 빛이', '예속 보다 자유가' 조금 더 옆으로 다가 왔다.

아직은 그렇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조금 더 복무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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