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던 아기가 열이 펄펄 나더니 기저귀에 피까지 묻어 나왔어요. 당시는 영문도 몰라 애만 태웠는데….”
2015년 8월 초 엄마 김모씨는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태어난지 30일도 안 된 아이가 고열에 휩싸였고 혈변이 반복되었다.
“이상한 느낌에 직원을 붙잡고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만 돌아왔어요. 며칠 뒤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조리원에 들이닥치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눈물만 흘렸어요.”
우리 부부는 2015년 8월 24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산후조리원에 머무를 때, 결핵 양성 판정을 받은 간호조무사가 근무했습니다. 아기에게 감염이 될 수도 있으니 8월 28일 은평구청 보건소에서 열리는 설명회에 참가하시고 '결핵예방약'을 받아가세요."
하니가 태어난지 84일 째 되는 날이었다.
8월 28일 설명회 날.
동그라미 산후조리원의 대표는 오지 않았다. 회사 직원 네다섯 명과 질병관리본부 직원 서너 명이 왔다.
동그라미 조리원 회사측의 마이크를 잡은 본사 직원의 태도는 방약무인했다.
"저희 조리원의 위생 관리 상태는 항상 최고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간호조무사의 개인적 일탈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되어 유감은 유감입니다. 회사 방침이 정해지는 대로 소정의 위로금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빠른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 앞으로 전화 하면 좀 잘 받아 주세요!"
태도는 건들건들 했고 다이소 헤어젤이나 까나리 액젓으로 범벅했을 머리는 번들번들 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여자 사무관 한 명만이 시종일관 엄숙하고 진지한 예의를 다했다. 시작부터 부모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희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조치든 말씀이든 부모님의 가슴에 뽑을 수 없는 깊은 대못을 박게 된 점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 분은 본인의 핸드폰 번호까지 알려주며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생기면 아무 때나 전화를 달라고 했다. 의사 출신 공무원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환자 경과 보고를 했는데 양성 판정 간호조무사의 스케줄을 잘못 보고했다. '7월 2일 흉부 X-선 검사 시행으로 폐렴이 처음 의심된 시점부터 7월 31일까지'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상대는 엄마들이었다.
엄마들은 초기에 산후조리원에 문의하였고, 해당 조무사는 '7월 14일부터 8월 18일까지 근무했다'는 통화 녹음 파일을 들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는 거짓인 것이 바로 밝혀졌다.
회사측 번들이가 나섰다.
"부모님들. 이거 전염성이 극히 낮으니 안심 하세요. 위험도를 1부터 10까지 본다면 위험도는 1이랍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바쁜 시간 쪼개서 온겁니다."
그 놈의 천박한 발언 이후 더 고성이 오갔고 분위기가 험악했다. 몇 시간 째 아이들을 들쳐 안고 있던 엄마들의 눈빛은 이글거렸고 아빠들은 주먹을 움켜 쥐었다. 육박전 임박이었다.
질병관리본부의 여자 사무관이 다시 나섰다.
"저희들의 확인과 자료 정리 과정에서 큰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당 직원이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8급 직원이라 큰 우를 범한 것 같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고 여러 예후에 집중하셔야 할 때가 아닌가 감히 생각됩니다. 대신하여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부모 대표님에게 신속 정확하게 진행 과정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차분한 부모 한 명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지금 여기서 흥분한다고 도움 될 것 하나 없습니다. 긴 싸움이 될 것 같으니 이성을 찾고 사후 대책 마련에 집중하십시다."
자체 집계 대상 인원은 총 93명이었고 양성 확진자는 23명이었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보건소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우리들은 숱하게 오갔다. 마누라의 고생이 심했다. 나는 아이를 안거나 업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도 사안의 엄중함을 아는지 크게 칭얼대지 않았다.(기억의 왜곡일 수 있음)
역학조사 대상 기간에 있는 120명의 아이들은 모두 예방차원에서 기본적으로 3개월 동안 약을 먹어야 한다고 통보받았다. 처방받은 약은 '유한짓정'과 '리팜핀'이다. 처음엔 설명대로 예방약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결핵치료제였다.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반드시 결핵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나 감염자가 어릴수록 감염됐을 때 발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했고 1세 미만 영아의 경우에는 결핵균에 감염되면 2명 중 1명에게서 결핵이 발병한다고 했다. 부부들 단톡방에서는 치료제로 인한 부작용, 특히 간 기능 손상을 우려했다.
결핵이 발병할 경우 폐결핵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파종 결핵(결핵균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경우)인데 뇌수막염이 동반 발병할 경우 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치료해도 뇌성마비 등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내 옆의 울보는 제 몫을 다 하는데 어김 없었다.
매일 한 번씩 그 약을 먹여야 하는 우리 부부는 사투를 벌였다. 약은 짙은 시뻘건 색이었다.
몸부림 치는 아이의 두 손과 두 발을 누르고 가루약을 넣어야 했다. 양도 상당했고 맛이 엄청 썼다. 아이는 계속 토했다. 하루에 한 번씩 셋 다 눈물 범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부모 대표가 은평구청 보건소에 93명의 피해 부모 모임이 있으니 나머지 27명의 피해 부모 명단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개인정보보호차원에서 제공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럼 우리가 나눈 정보를 보건소에서 120명에게 일괄 공지 해줄 수 있냐고 문의하니 가족들이 주최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내용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를 당했다. 추가 문의는 다산콜센터에 남기라는 말을 했다.
울화통이 터진 나는 그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이재오 의원' 지역구 사무실로 부모 대표 몇 명과 찾아갔다. 원래 지역구 주민에게 친화적이기로 유명한 이재오 의원이었지만 지역구 사무실 직원들의 진입 장벽이 있었다. 내 부친의 이력이 도움이 되었고 이재오 의원과 대면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국회에서 '공청회'까지 잡아주겠다고 약속 했다.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니 탄력이 붙었다. 나는 바로 옆 구청 직원이었지만 은평구청으로 다음날 쳐들어 갔다.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만남과 공청회 상황을 살짝 흘리니 복지부동 공무원들이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질병관리 본부까지 압박하였고 전체 피해자 명단을 전달 받아 작은 일사불란함을 실현할 수 있었다.
9월 11일.
2차 설명회가 이루어졌고 전수조사와 역학조사의 대상과 기간도 확장해 준다고 약속 했다. 산후조리원에서 2명, 질병관리 본부에서도 2명만이 배석했다. 1차 때보다 인원이 줄었다.
나쁜 전조였다. 그것은 진화용 설명회였다.
9월 14일.
동그라미 산후조리원 측은 공식 입장으로 양성 판정자에겐 위로금 100만 원과 산후조리원 이용금액의 10% 환불, 음성판정자에겐 위로금 50만 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 몫은 50만원 이었다.
부모들은 경악했지만 의견이 나뉘었다.
소송까지 가자는 사람과 받고 끝내자는 사람으로 갈라졌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전자였다.
몇 십 만원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선악의 구분, 시시비비의 어떠한 끝을 보고 싶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부모는 자식을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천형의 존재들이 아닌가?
사측에서 전화가 몇 번 왔다. 회유 전화였다.
"아버님, 일단 이 돈 받으시구요. 저희가 내부적으로 협의해서 더 준비해볼께요. 대표님과 이사진과의 의견이 서로 달라요. 저희 사정도 좋지는 않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딴 전화할 시간에 선생님 가족에게 이 일이 생겼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대표와 이사들과의 문제를 왜 나한테 얘기해요? 나 더 건드리지 마세요.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 더 열 받게 하면 여론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어요."
나는 그 때 유튜버가 되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부모들은 지쳐갔다. 공청회도 불발 되었다. 질본 여자 사무관의 태도도 돌변했다. 더 이상 예의를 찾지 않았고 수 십번 시도 끝에 통화에 성공하면 짧은 답변만 돌아왔다.
"아버님 저희는 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요. 현재 역학조사 대상자를 확대할 계획은 없어요. 이제 출장 나가는 길이라 오늘은 통화가 힘들어요”고 답변했다. 너무 익숙한 패턴이었지만 많이 지쳐 있었던 탓과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우리 부부(공무원)는 이해하기로 했다.
조리원은 단 한 차례의 정식 사과도 없었다. 대기업답게 대담함이 대단했다.
부모들은 2015년 9월 업체와 대표, 이씨 등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소했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동시에 진행했다.
형사 건은 2016년 증거불충분으로 패소했다. 우리 모두는 망각의 늪으로 들어갔다. 그것 말고도 육아 전쟁 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2018년 1월 10일에 두번째 소송에 대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부장 오선희)는 '감염 신생아 23명, 감염 우려로 결핵약을 복용한 신생아 52명과 이들의 부모 142명이 YK동그라미 산후조리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신생아 한명당 260만~500만원 씩 총 2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간호조무사가 폐 이상 소견을 진단 받은 날(2015년 6월 29일)을 감염 가능성을 인식한 시점이라고 봐야한다”며 “이 시점부터 산후조리원은 업무 중단 등 집단 감염에 대비한 조치를 취해야 했음에도 주의 의무를 위반한 책임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병원이나 조리원 측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이런 종류의 소송에서 부모의 손을 들어준 첫 소송이 되었다.
우리 딸은 이제 알약도 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