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넘게 여러 주제로 일기를 쓰고 있다.
현재 가장 넓은 평수의 마음방을 차지하고 있는 딸에 대한 일기가 역시 많다.
어제 소재(결핵 투쟁의 날들)의 일기를 언젠가는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딸의 어떠한 그 다음 글들을 편하게 써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제의 글'이었다.
물론 써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브런치 스토리 저장글에 넣어둔지 2달이 넘었던 건더기들이었다.
이제 썼다. 되었다.
나에게는 세 개의 꼭지점이 있다.
하나는 엄마.
이 아줌마에 대한 글을 쓰기는 참 어렵다. 나의 '과거'와 '근원', '원죄'와 '악몽'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쓰면 아프다. 그래도 뒤돌아 기록하고 복습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둘은 마늘.
역시 이 아줌마에 대한 글도 쓰기가 어렵다. 나의 '현재'의 평행선 위에 함께 서 있기 때문이다. 쓰면 많이 아프지는 않은데 아플까봐, 아파할까봐 어렵다. 그래도 역시 함께 가야한다. 나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관통해야할 유일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셋은 딸.
그냥 이 아이에 대한 글은 막을 수가 없다. 쓰기가 쉽다. 어느새 쓰고 있다.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약에 잇닿아 있다. 어떠한 '가능성'과 '시작', '희망'과 '도약'을 꿈꾸게 한다. 그냥 나는 '아빠'로 다시 태어났다.
삼각형의 세 각의 총합은 180도이다.
앞으로 펼쳐질 예각과 둔각의 대결이 흥미롭다. 변 밖으로 쫓겨나지 않으려면 잘 해야겠다.
월요일로 돌아가 보겠다.
지난 토요일에 오랜만에 씽씽카를 타고 싶다며 30분 넘게 나갔다가 온 아이의 낌새가 이상하더니 역시 제일 친한 친구를 모시고 함께 들어왔다.
일요일 밤 자기 방에서 나랑 자자고 한 딸은 밤새 기침을 하며 잠을 설쳤다. 새벽녘 물마시러 나왔던 마늘이 안방으로 데려가 토닥여 재워본다.
아침에 마늘은 하니가 '학교에 못 가겠다'고 한 말을 전한다.
나는 갈등하다가 일단 출근을 했다. 푹 자고 일어나서 아빠한테 연락하라는 문자를 남기고 8시 40분에 집에서 나왔다.
핸드폰에 알림창이 뜬다. 9시 반. 딸이 새로운 게임을 다운 받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나올 때 침대에서 하니는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출근한지 한 시간 만에 '가족돌봄 휴가'를 달고 퇴근했다.
똑닥 예약을 하고 병원에 데려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부채살'을 구워 줬다. 맛이 없다면서 깨작 거린다. 부채살 먹보가 입맛이 없긴 한가 보다.
그래도 씩씩하게 이제는 잘 먹는 '알약' 4알을 꿀꺽했다.
'뚜레쥬르'에 가서 가장 좋아하는 '크로아상'을 사다주니 조금 먹는다.
잘 먹이고 꼭 재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퇴근했던 나는 같이 침대에서 자자고 몇 번을 말한다. 역시 내 말에는 신경도 안 쓰고 슬라임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좀 지났더니 놀아달라 한다. 조건을 걸고 가장 자주 하는 '침대에서 간지럽히기 놀이'를 해줬다. 예상대로, 조건대로 고이 잘리가 없다. 또 장난을 친다
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옆단지 '플라톤 국어논술 수업'에 갈 시간이 되었다. 20분 밖에 안 남았는데 마루에서 티비를 보던 딸래미가 '아빠 나 잘께'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설거지를 마치고 들어가니 쌔끈쌔근 잠이 들었다.
잠깐 고민하다가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고 보강을 잡았다. 한 시간 반을 꼬박 자고 일어난다. 더 자면 다음 학원도 째고 재우려 했더니 일어났다.
'영어 학원' 갈 시간이다. 셔틀 버스로 안 간다며 학원까지 바래다 달라한다.
차에 타자마다 이따가 데리러도 오면 안 되냐고 말한다. 집에 와서 블로그 탐방을 하려던 나는 끄덕인다. 학원 옆 카페에서 2시간을 기다린다. '바질 소금빵'을 순삭하고 이웃 블친들 글을 읽다보니 금방이다.
저녁에는 뭘 해주면 잘 먹을까 고민이 깊었는데 결국 자주 가던 곰탕집에 데려가 '양지곰탕'을 시켜줬다. 잘 먹는다. 숙제를 후딱 해치우더니 또 놀아달란다. 나도 전날 2시간 밖에 못 잔 상태였지만 1각형의 소원이니 또 들어준다. 또 '침대 놀이'를 한 바탕 했다.
머리를 감겠단다. 플라스틱 계단 받침을 들고 오더니 무릎을 꿇는다. 호스를 잡아준다. 자자고 하니 유튜브를 보잔다. 아빠는 책 보면 안 되냐니까 안 된단다.
'보넥도' 유튜브 두 개를 꾸역꾸역 같이 본다. 남돌 예능은 재미가 없다. 그냥 참고 앉아 있는거다.
같이 누웠더니 30분 넘게 더 떠든다. 재잘재잘. 아빠가 잘 놀아준 날은 유독 말이 더 많다.
"아빠. 그거 알아? 나는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다 4명씩 친해져서 놀았다. 신기하지?"
"아빠. 회사 얘기 또 해줘. 그래서 아빠 대각선 사람이랑은 좀 친해졌어?"
"아빠. 서천 가는게 이번 주인가? 다음 주인가? 외할머니한테 한 번 더 전화 드려야 하지 않아?"
"아빠. 이번 수요일은 연서랑 방송 댄스 수업 처음 같이 날이야. 신나!"
"아빠..."
몸은 힘겨웠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시종일관 '시종' 일관이었다.
빨리 싹 나아서 금욜날 신나게 기쁜 맘으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