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무례한 탈주'에 기분이 안 좋은 나날들이었다.
팩스 휴직에 도전했던 그 직원은 어제 어찌 어찌 출근 했고 상할대로 상한 사과 한 조각 날리고 '빛삭' 했다.
고통은 남은 사람들의 고스란한 몫이다.
'고통 분담은 고통 전담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그래도 차석으로서 이를 악물고 잘 들어가라는 인사는 건네줬다.
나의 어제 퇴근 전까지는 엉망의 시간이었다.
퇴근 후 신도림 '오사카로'로 향했다.
국세청 7급 동기들과의 만남.
2009년 처음 만난 우리는 각자의 사정과 저마다의 사연으로 흰 그늘의 시절을 보내왔고 재작년부터 정기적으로(서너달에 한 번쯤) 만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놈들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나 지하철, 택시 속 나의 마음은 언제나 감동이고 충만이었다. 따뜻했다. 그런 사람들이다.
유행하는 지브리풍 사진으로 변환해 봤다. 왼쪽 큰바위 막내에 막혀 한 아이의 얼굴을 지브리가 지워버렸다.
요즘 하도 이 지브리풍 사진이 만연하여 지브리가 단단히 화가 나 있다고 해서 한 스푼을 보탠다.
한 명씩 파도를 타본다.
왼쪽 턱을 괴고 있는 나는 나다.
그 뒤가 오늘 모임의 대장님인 72년 생 형님이다.
모일 때마다 양주를 한 병씩 가지고 나오는 달짝지근한 순수함의 큰 형님이다.
마음의 품이 넓어 '허허실실'을 탈착하는 법이 없다.
교육원 시절에는 흙마늘을 꾸준히 드시며 사람의 덫에 빠진 즈음을 무척 행복해 하셨던, 누군가와의 만남이든 '계산이나 척도 없이' 진심으로 대하는 '생래적인 자유와 해탈'을 장착하고 있는 형님이다.
다음 모임에도 양주 한 병을 가져오시다고 했다.
이 형님의 멈춤 없는 베품은 경제적인 '넉넉함'이나 물질적인 '부유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착하고 풍요로운 마음'에서 나오는 주변에 대한 '계산 없는 배려'이다.
그 뒤는 나와 77년생 동갑인 친구로 언제나 부드러운 미풍이다. 머리도 새하얗게 변한 산타 친구.
착한 마음은 기본이고 무슨 대화를 시작해도 이 놈과 대화하면 부드럽고 편안하게 끝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도드라진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대화 보다 이처럼 '유하게 잘 들어주며 즐거운 미풍을 안겨주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좋다.
교육원 때 연애 경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 소개팅 나가서 어떤 멘트들을 던져야 하냐고 물어본 귀여운 친구.
그러고 보니 그 시절 내가 이 놈에게 붙였던 별명이 '곱단이'다. 목소리도 얄쌍한게 참 고왔다.
그 옆이 또 다른 동갑 친구.
어제 모임의 제목은 이 녀석의 제주도에서 서울청으로의 발령이었다.
멀리 앉아 있어서 별 대화를 나누지 못 했지만 이 놈 역시 '착함과 부드러움' 거기에 '헐렁하지만 짠짠한 유머'까지 장착한 예인이다.
한참 어린 젊은 여자와의 불륜이지만 낭만적인 영화의 주인공에 어울리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정이 많다. 요란 떨지 않는 그 따뜻함을 알기에 어제의 술자리에서 이놈과의 적은 대화는 못 내 아쉬웠다.
교육원 때는 71년생 큰 형님과 트윈으로 추리닝에 슬리퍼를 장착하고 여기저기 머털 도사스런 풍류와 해학을 던지며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조만간에 나의 마늘과 다시 조촐하게 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서귀포에 계신 제수씨에게 한 달에 한 번 내려간다고 하니 그 사랑의 두꺼운 농익음을 잘 헤아릴 수 있겠다.
앞이 78년 생 동생.
교육원 때 나랑 단짝이던 제일 친한 놈이다.
우리 중 가장 빨리 사무관이 되었다.
착한 마음과 인간에 대한 애정, 성실함과 헌신성이 '부지런함'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어떠한 모습을 현현시키는지 이 놈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놈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주어져도 조직과 관계의 진보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답을 도출해 내는 놈이다.
세무서의 과장쯤 되면 단 한 놈년도 빼지 않고 자기만의 거드름과 낮잠의 권위를 덧대는 자취를 더해가기 마련인데 이 놈은 다르다. 미친 놈이 전화를 가끔 할 때마다 자기 지금 업무 때문에 너무 바쁘단다.
안 봐도 비디오다. 정말 그리 살고 있을 놈이다.
교육원 때 반장이어었고 서툼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 특유의 성실함과 인간에 대한 진심으로 우리 반을 잘 견인하였고 지금까지 이런 모임을 추동할 수 있게 만든 놈이다. 내 인생 베스트 귀인 중 하나이다.
그 앞에 한 명이 있는데 윗 사진에는 없다. 78년 생.
개인적으로 내가 손에 꼽는 외모이다. 이 놈도 부드럽다. 헌신적이다. 모두가 좋아한다.
2016년에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한 동생, 교육원 때는 서울청에 진입하고자 공부만 했던 동생. 그 인품과 매력을 구체적으로 잘 모르다가 2년 전부터 그에게 아롱져 가고 있는 나이다.
감성도 풍부하고 활자에 대한 천착도 분명하여 나와 결이 잘 맞는 귀한 동생이다.
트럼프의 광란의 관세 칼춤으로 인한 전반적이고 중장기적인 주식 시장에 대한 회의의 전망을 전했고 나에게 'ETF'를 추천했다. 염두할 것이다.
왼쪽 제일 앞. 막둥이 82년 생. 이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이다.
유머와 재치와 애교로 중무장한 막냉이. 대학 시절부터 밴드부 활동을 하고 내세울 만한 미끈한 외모가 아님에도 좋은 입담으로 좋은 연애를 꽤 했을 귀여운 동생.
지금은 세무사 공부에 열을 내고 있는 친구, 정이 많고 마음밭이 넓어 상대가 누구든 잘 맞춰주고 상대의 웃음을 이끌어 낼 줄 아는 친구, '와이프와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 줘야 하는지 아는' 친구, 배울 점이 많은 친구.
6월쯤 마음을 모아 놀러가자는 말에 자기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가슴을 벌렁거리는 솔직한 친구다.
내가 지금 다니는 구청에 2008년에 3개월 쯤 근무했던 적이 있는 신기한 인연의 동생.
귀여워 죽겠다 이거. 합격을 기원한다.
오늘의 촘촘한 일정 때문에 1차가 끝나고 나는 일찍 가겠다고 했다.
'사무실 짭X 때문에', '이따가 있을 발표 때문에' 공상량이 많았던 나를 이 선량체들이 놓칠 리가 없다.
"형 오늘 이상해, 제발 다음부터는 술 좀 마셔. 형이 안 마시니 재미가 없어"
"야. 고민 있어? 마음 풀고 안주 좀 먹어"
"일찍 가는거 안 돼. 조금만 더 있다가. 사정 있으면 어쩔 수 없지만..."
나 하나 택시 잡는데 6명이 같이 기다려준다.
완전 미친 놈들 아닌가?
"다음에 제대로 놀자. 오늘 이래저래 골똘량이 많았다. 다음에는 본 모습으로 돌아올께! 먼저 가서 미안"
나의 두 손에 열 두 손이 화답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10시 반이 넘었는데 딸한테 문자가 온다.
"아빠 출발한거 다 보이거든! 요아정 꼭 사와~"
아이쉐어링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