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요일 오전마다 하는 재활 치료를 마치고 구청 정문 계단을 오르려는데 어느 노인 분이 갑자기 우뚝 멈춰 나를 막으신다.
"오웰! 너..."
세무서 다니던 시절 내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종로 팀장님이셨다.
2009년 7급으로 다시 서대문 세무서로 돌아갔을 때였다.
"어이 너 다시 왔구나? 이 새끼 반갑다. 저녁에 한 잔 하자고!"
복도에서 마주친 그 날 바로 둘이 대포집으로 향했다.
팀장님은 천재였다. 특히 재산(양도, 상속, 증여) 분야의 귀신이었다.
365일 중 363일 술을 드시는 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기일에만 안 드신다고 했다.
나랑 같은 과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나를 참 아껴주셨다.
2006년 9급 시절에 대뜸 다가오시더니 "어이 너 나 알지? 나 종로야. 저녁에 나랑 한 잔 하자."
'두주불사'와의 독대였고 나는 언제나처럼 예상에 없고 있던 '자벌레'가 되었다.
나는 인복이 참 많았던 것 같았다. 특히 세무서 다닐 때 좋은 사람을, 정이 많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2005년 초임 발령 첫 날. 부가가치세과 부가2팀장님.(옆 과 팀장님)
바로 그 해가 정년이셨는데 발령 첫 날 초면에 나보고 저녁에 "오웰이지? 이따가 '연탄집'에 가서 한 잔 마시자" 홍제역 연탄집(지금도 한 번의 이전을 거쳐 장소는 바뀌었지만 있음) 에서 나는 발령 첫 날 전사했다. 나는 28년간 나를 계산하며 마신 적이 없다. 그래서 후회가 된다.
꾸준히 나를 챙겨 주셨고 공부하란 말을 자주 해주셨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엄격한 분이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어렵지 않았다. 품계를 받은 기분으로 살았는데 그 분의 정년 퇴임날 꽃다발 하나 사드리지 못 했다. 그렇게 나는 부족한사람이었다. 떠나시는 날에도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공부만이 살 길이다. 나는 잊어버리면 되는 사람이고, 어머니한테는 잘 하고."
2005년 초임 발령 때 서대문세무서 징세과 정리1팀장님(담당 팀장님)
이 분도 365일 중 360일 술을 드시는 분이었다. 이 분도 천재였고 세무 조사 쪽의 천재셨다. 집 방향이 같아서 회식 후 항상 나를 택시에서 내려주셨다. 술이 되셨을 때도 손을 꼭 잡고 얘기하셨다.
"잘 들어가고 어머니한테 잘 해라. 다른거 필요 없고 당당해라."
2005년 초임 발령 때 정리2팀장님(옆 팀장님, 로버트 레드포드 닮음)
나랑 마늘이 만난 해 마누라 팀 담당 팀장님이시기도히다. 나의 결혼에 영향력을 끼치셨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머와 해학이 넘치고 권위를 내려둔 분으로 나한테 금언이나 조언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항상 나를 지켜보며 꿰뚫고 계시던 분. 내가 업무 때문에 힘들어 하면 지나가면서 툭 던지고 가신다.
"헤이. 오웰씨~ 거래처에 역으로 전화해서 매입처별 세금계산서 달라고 해봐!"
나는 퇴근할 수 있었다.
2009년 7급 재입사 후 서대문세무서 재산세과 재산신고팀장님(담당 팀장님)
이 분 역시 천재. 연세대를 나온 수재로 내가 어려워하는 자료가 있으면 말씀하셨다.
"밍기적대지 말고 가져와 봐, 이거 하고 한 잔 하러 가자고. 오늘은 해물찜 어때?"
자료처리는 일사천리였다.
2012년 용산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실 민원봉사실장님(담당 팀장님)
이 분도 천재. 서울청 조사1국에서 세무조사의 큰 칼 많이 휘두르다가 칼맞고 민원실로 유배 오신 분, 이 분도 나보고 항상 공부하라고 하셨다. 나의 문학적 감수성까지 파악하셔서 책 선물도 두어번 해주셨다. 내 취향의 책은 아니었다.
"공부해. 공부해서 세무사 따서 나가. 오웰 성격이면 금방 자리 잡을 수 있어. 왜 민원실 이딴 곳을 와. 가능하면 조사과랑 재산과만 돌아. 술은 마시지마. 목표 달성 할 때까지."
2013년 서울시청으로 교류해서 떠날 때도 팀장님이셨는데 아쉬워하시면서 말씀하셨다.
"가서 뭐라도 공부해. 내가 볼 때 너는 뭘 해도 될 놈이야. 술은 줄여. 나한테 연락할 필요는 없어. 충성!"
세무서 다니던 7년 동안 존경할 만한 팀장님만 얼핏 꼽아도 여섯 분이나 만났다.
이것은 팀장 기준이고 더 넓게 잡으면 스무 명도 넘는다.
나는 태생적으로 건방진 놈으로 누구를 쉽게 우러르지 않는다. 내가 그 곳을 그리워하는 이유다.
참고로 12년 째 계속 근무하고 있는 지금의 구청에서는 존경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애써 꼽아 한 명 정도 발라낼 수 있겠는데 결국 이 쪽으로 옮기지는 못 하겠다. 퉤퉤.
전반적으로 품질이 좋지가 않다. 재공품 투성이다.
종로 팀장님과 16년 만이었다.
"팀장님 잘 계셨나요? 저는 이 구청으로 온지 12년 되었어요."
"알고 있었다. 임마. 얼굴 좋네. 술 안 마시나?"
"네. 큰 수술 두 번 하고 이제는 안 마십니다."
나는 연락 한 번 드리지 못 했는데, 팀장님은 내 행로를 다 알고 계셨다. 죄송했다.
"내 니 결혼식에도 갔는데 기억 못 하나?"
"네. 아 이 죽일 놈의 기억력." 나는 참말로 기억이 안난다.
"마누라는 잘 있고? 애는 있나?"
"네 재작년에 세무사 합격해서 작년에 개업했습니다. 헤매는 중이죠. 딸은 하나 있는데 이제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팀장님은 잘 지내셨나요?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이래 못났습니다. 근데 팀장님 생각은 가끔 했네요."
진심이었다. 나는 사람을 안 챙긴다. 먼저 연락하는 법이라는게 없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냈다.
"오웰아. 내가 이제 70살이다. 근데 코로나 때 비트코인 하다가 쫄딱 망했어. 지금 마누라랑 하나 남은 오토바이 처분하러 왔다."
"사모님 어디 계세요?" 팀장님이 가르친 나무 밑에 차분한 느낌의 사모님이 계셨다.
가서 인사를 드렸다.
"어이 여보. 내가 몇 번 말했지. 몸 불편한데 씩씩하고 유쾌한 놈"
"아! 말씀 들었어요. 바쁘신건 아니에요? 이 양반 때문에 못 들어 가시고 있는거 아니에요?"
얼굴도 목소리도 참 고왔다.
1층 자동차 등록팀에 동행해 서류 작성하고 업무 처리 다하실 때까지 옆을 지켰다.
포옹하며 헤어지며.
"팀장님, 죄송한데 제가 팀장님 연락처가 없어요."
"그래. 보자. 어. 이 번호 맞나?"
팀장님은 정확히 내 번호를 가지고 계셨다.
조직을 여러 번 바꿨던, 인연 귀한 줄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 도리를 잘하지 못하는 한정치이기주의자인 나였다.
연락처를 저장하고 식사하러 오시라고 했다. 팀장님도 건강 때문에 이제 술은 안 드신다고 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온 재산통 수재였는데 8급 시절 5급 과장과 한 번, 7급 시절 4급 서장과 한 번, 대차게 부딪혀(서장 멱살을 잡음) 승진길을 스스로 막아버리신 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주말이면 사모님과 꼭 등산을 가시던 분, 밀양 분이셨는데 항상 나의 아버지 말씀을 하시며 세상이 풍지고, 서럽더라도 당당하라고, 가슴 피고 살라 말하셨던 분, 노자 책에 있는 좋은 문구를 붓펜으로 옮겨 쓰신 종이를 복도에서 만나면 건네주시던 분.
이 글로 어제를 새기는데 지금 또 먹먹하다.
모두가 아까워 하던 천재였다. 학벌 좋고, 언변 좋고, 기개 있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분, 그 분을 따르던 후배들이 많았다. 누구든 반겨 어깨와 가슴과 머리를 내어 주셨다.
술 한잔 같이 걸치면 정태춘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걱정하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나를 부르셨다.
"오웰, 내가 좋은 포장 마차 찾아놨다. 가자. 오늘은 좀 울고 싶다."
그 날 펑펑 우셨다. 나도 작살이 났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나이의 '허울'과 위계의 '부림'을 넘어 자기를 그대로 내어 비춰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가식으로 덥지 않고 검은 자위보다 흰 자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십자가 앞에 서지 않더라도 불의에 항거하다 숨져간 영혼과 허망하게 앗겨버린 젊음들을 위해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고귀한 것을 주면서 생색내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자신을 이유 없이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품어 그들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입으로는 '사랑이 부족하다'를 달고 살면서 거지에게 기꺼이 몸을 낮추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오른쪽 다리에게 자신의 왼쪽 다리만을 찾지 말고 옆에서 절뚝이며 뒤따르는 다른 오른쪽 다리와 발 맞추어 함께 가자고 말하는 사람.
참다운 '사랑'은 자기의 자유를 밑밥 삼아 모든 사람이 더 자유하게 살도록 힘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얻은 참된 '자유'가 많아질 때 참된 의미의 인간화가 이루어져 사람 사는 세상이 될 것으로 여긴다. 사랑이라는 것이, 평화라는 것이 '싸움과 전쟁이 없는 상태'만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의 편에 조금 더 자리매김할 때, 각자의 '인간'이 모여 서로의 '사람'이 될 때, 그렇게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그만하면 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