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걸어야 한다.
나에게 '걷기'란 두 다리의 교차나 수평의 유지에 임박하는 보행을 넘는 하나의 거대한 '초월'이다.
나를 걸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미는 직을 버렸고, 나의 불균형한 절뚝 보행이 확정되자 아비는 어미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나의 애비 에미는 그랬었다.
4개월여 전부터 블로그에 '글쓰기'를 시작했고 3월부터는 '미라클 모닝'도 하게 되었다.
미라클 모닝 대장님한테 초반에는 목표 루틴에 '운동'도 넣어 달라고 했었다. 이내 뺐다.
글쓰기의 맛 때문에 '1일 1포'도 어렵던 내가 '1일 2포' 이상을 하기 시작했고 새벽과 아침 시간을 한 '호흡'에 잡아 먹기 일쑤였다.
'경직성 뇌성마비'라서 나는 아침에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보행의 형태가 심히 구차하다.
48년간 불연속적일지라도 내 아침의 중심은 '걷기'나 '운동', '산책'에 있었다.
'걷기'와 '운동'은 나의 머리이자 심장이었다.
글쓰기가 '운동'을 잠식 했고 나는 스스로에게 멈춤 없이 부끄러웠지만 '관성'이 무서웠다.
어미는 가끔 물었다.
"아들아, 운동 꾸준히 하고 있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거짓말이 꾸준했다.
하니가 4살 무렵이었다.
갈현동 집에 딸을 마늘이 안고 들어가자마자 할미가 손녀에게 물었다.
"하니야? 아빠 요즘 운동 열심히 하니?"
평소에 그 부분에서 치밀한 응대 메뉴얼이 있는 나는 그 어린 딸에게도 사전 교육을 나름 철저히 해놓았지만.
"할마니. 아빠 요새 운동 잘 안 해요. 나한테 아빠 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답하라 했어요."
그 날 엄마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기분'은 밝았다.
블로그 귀한 친구분인 '즐거운 호호'님이 5월 12일부터 'SIMPLE WALK 하루 30분 산책 챌린지'를 시작했다.
나는 '운명'을 느껴 신청했고 산책을 시작한지 3일째다.
첫 날(5.12)은 집에서 구청까지 걸었다. 37분이 걸렸다.
홍제천을 걸으며 반가운 오리 친구들과도 해후했다. 첫 날은 '혼자'였다.
어제는 차로 출근했다. 안산을 걸으러 나가는 길에.
예전 내 글에 등장했시켰던 'ISTJ', '아이큐 148' 동생을 만났다.
'산책'을 제안하니 흔쾌히 동행했다.
애정하는 동생과 각자의 억울함과 분노, 가벼운 다짐과 생각들을 나누니 '30분'은 우습게 지나갔다.
우리 둘은 요즘 비슷한 처지에 처해 있다.
역시 인생은 '따로 또 같이'의 반복인 것 같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함께 걷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좋다. 둘만의 캡슐 데이트.
오늘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패밀리 데이'다.
둘째, 넷째 수요일을 가족과의 행복을 되찾으라는 취지로 구청에서 설정해 둔 날이다.
초과 근무가 인정 안 되는 날이라 전직원이 9시에 맞춰 오는 날이다.
귀하고 착한 동생이 산책 때문에 빨리 나올까봐 오늘은 '혼자'를 택했다.
'안산'을 걸었다.
터지는 녹음 직전 시기 특유의 청신한 내음과, 새소리가 너무 좋아 '이승환' 노래 소리를 줄였다.
오십 세에 임박하자 사회적 관계와 부박한 인연, 분주한 유행이나 끊임 없는 수군거림 등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루소가, 소로우가 좋아하고 향유했던 숲 속의 산책길을 걸은 이 아침 기분이 좋다.
겨울이 아니라 하얀 오리털 깃털 유무를 확인할 수 없지만, 지난 이틀간 챌린지 참여자들에게 하는 일련의 피드백을 보니 '즐거운 호호'님은 천사가 맞다. 한 인간에게 이렇게 완벽한 감동을 얻은 것은 참 오랜만이다.(두 달여 만인 것 같다. ㅋㅋㅋ)
더 이상 나의 '평판'을 섣불리 확인하거나, 좋은 인연들을 '선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적'을 설정하여 애써 구슬리고, 갱신 부재의 바보들과 어울리는 짓을 하지 않겠다.
그 새로운 도상으로의 틈입에 '읽기', '걷기', '쓰기' 꼭지점 삼각형이 그 형체를 잘 갖추어 갈 듯 하다.
나에게 '산책'은 다른 곳으로 조금 더 가보는 '공간의 이동'임과 동시에 나의 방금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보는 '시간의 이동'이다.
남들보다 힘들었던 걸음들은 나에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침묵의 걸음'이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산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삶을 더 잘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걷는다는 것은 '중력의 방향'과 '계절의 속도'를 견디다,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존재의 유한함'과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고, 자신의 '유한한' 성취 이전에 '무한한' 조건들이 선차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계속 걸을 것이고, 자주 '산책'할 것이다.
산책 Ok? 일단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