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우려했던 부분이 호흡이었고, 흡기가 짧아져 폐섬유화를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하루만 더 지켜보시고 이상이 없으면 산모님은 내일 퇴원하시면 됩니다."
의사가 말한 더디던 일주일의 '벽'을 넘긴 날 아침의, 밝은 소식이다.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버티던 심장을 풀고, 나는 이제야 불편하게 울 수 있겠다.
기가 막힌다. 아이 아빠가 빼꼼히.
"여보, 연락 받고 왔어. 애썼어. 장모님 댁으로 갈꺼지? 바로 가봐야해. 내 또 연락하리다."
어찌 닿은 연락일까? 어찌 저리 신출 단출할까?
내 오랜 빈 가슴을 얼마나 더 비워야, 한 때 함께 채웠던 추억을 다시 기억하고 싶을까?
참 고마운 사람.
아이 때문에 지새던 불면의 새벽들,
그 걱정거리의 주연을 단숨에 바꿔버린다.
7남매의 장남인 남편은, 상의라는 것이 없다.
'협의'가 아닌 '통보', '대화'가 아닌 '명령' 뿐이다.
같은 회사에 있을 때, 그는 만인의 영웅이었다.
치열하게 정의로운, 당당하게 진실한 '대장'이었다.
결혼 이후.
남편은 '합동통신사' 외신부로 옮겨갔고, '민우회 활동'에 전념하면서, 외박은 일상이 되었다.
'촌지 회수 운동'과 '언론 민주화'만이 가끔 차려지는 우리집 밥상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밤마다 집을 비우고, 새벽녘 지친 얼굴로 돌아와 내 곁에 눕기도 전에 나갔다.
옷깃에서, 가끔 낯선 분 냄새가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의 아내이지만, 늘 그의 삶, 척도에서 외떨어진 사람이었다.
깨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불의'와 맞서 싸우는 그가 자랑스러우면서도.
특히 임신 이후.
찬란히 뜨겁던 불빛의, 차갑게 식어버린 가장 먼 그림자가 된 것 같은,
더 이상 그의 눈길이 내 근처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냉정한 명백함이,
무언가를 되새기게 했다.
나는 본디 여자였다.
자궁이 있는 여자이기 전에,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고, 함께 웃고 싶은 여자였다.
다음날
유난히 애살스럽던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았다.
"산모님, 잘 될거에요. 저희가 잘 보살필게요."
나는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젖은 고개만 끄덕였다.
불현듯 떠오르는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그래, 씩씩해야 한다.
앞으로 명멸하는 수많은 형극의 길 위를 나는 끝끝내 내딛어야 한다.'
안아보지 못 한 빈 품,
느껴보지 못 한 체온,
만져보지 못 한 손끝,
나는 걸음을 옮긴다.
보면 터질까봐,
걷잡을 수 없이 멈출까봐,
아이를 보지 않고 나온다.
"며칠이면 될까요?"
"3주 정도면 품에 안으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가 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시면 됩니다."
"아가? 되겠니? 네 핏덩이 안 보고 나와도 되겠니?"
"네 엄마, 이게 최선이에요"
문을 연다.
몇 걸음 간만큼 다시 몇 걸음.
문을 연다.
너에게 간다.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기계의 똑딱이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창백한 빛 속, 너무 작은 내 새끼가 그대로 있다.
눈을 감고 있지만, 금세라도 깨어나 나를 볼 것 같다.
"아가, 잘 있어, 금방 올게"
우리의 계절은 그토록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