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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1 일기(음주예찬-비움과 채움-)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국세청 시절의 끄적임

by 하니오웰

나는 2024년 12월 21일부터 금주를 시작했고, 매일 금주일기를 써왔다.

자다 깬 방금 똥을 싸며 손질을 하다가 귀한 내 개인 사료를 발견했다.

2012년 10월 31일 끄적였던 '비움과 채움'이란 제목의 음주 예찬. 권주가이다.

13년 전. 36살. 용산 세무서 민원실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기. 그리운, 돌아갈 수 없는 국세청 그 시절 조금은 젊었던 생각을 그대로 올린다.


나는 평생 아주 띄엄띄엄 일기를 써왔는데 읽어 보니 꽤 공들여 쓴 일기였다.(매일 쓰기 시작한 것은 2024.12.21이 처음) 그래도 책을 꾸준히 보던 마지막 시절이라 그런지(결혼 후 10년 간 독서를 거의 끊었음) 문장의 골밀도가 지금 보다 좋다. 다시 잔을 채워야 하는가?



가을...여름보다 밤이 빨리 다가오고, 더 길게 머무는 계절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속절 없이 쳐다보는 사람들, 낙엽을 밟으며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 보행의 심미성을 해하는 수거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사람들. 담은 빛깔만큼 우리에게 제각각의 낙엽이다.

낙엽이 스스로의 본새를 뽐내며. 코끝을 시큰하게 다독이는 이 시절은 고요와 섬세, 고독 따위의 제목으로 잔을 채우기 좋은 시절이다.


'술'과 인연을 맺은지도 십 수 년을 훌쩍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녀석의 정체를 도통 모르겠다.

신새벽 단잠을 깨우고 마는 숙취에 얄밉다가도 노을 지면 그리워지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가볍지 않은 자폐 기질과 인간 일반에 대한 두려움, 피해 의식이 적지 않았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 술을 곁에 두면서부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갔다.

술은 상대를 마주볼 수 있게 해주었고, 목청을 돋울 수 있게 해주었고, 솔깃하고 은근한 얘기들을 풀어놓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첫 동기 엠티에서 각자의 가슴 밑바닥에 부서지는 파도를 간직하고 있던 갓 스물을 채운 우리들은 허파를 연신 데우며 서로의 물결 속으로 떠내려 갔다. 좁은 방에는 그들이 빚어낸 총천연색 액젓들이 난무하였고, 나의 시각과 후각은 본연의 임무를 더해갈수록 본연의 기능을 잃어갔다. 어떤 놈이 뱉어낸 분수가 놀라운 상호 견인력을 추동하여 천정에 가 닿기도 했고, 토사물을 생무스라 칭하며 머리를 넘겨대던 녀석과, 건더기를 양말에 가득 담아 옅은 선홍빛을 띄게 된 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발그레한 아그네스들을 협박하던 녀석도 있었다.


그 날의 충격은 나에게 술에 대한 습관을 깃들이게 해주는 역효과를 발휘하여. 나는 닿을 수 있는 학내의 모든 술판에 기웃거렸다. 소심과 약간의 우울과 몽상으로 보내왔던 이십 여년을 청산하고, 나는 숨어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부릅뜬 눈과 어금니를 깨물어가며 언성을 높이는 법과, 걸걸한 욕설을 섞은 음담패설을 밑밥 삼아. 허풍과 적당한 비밀을 뱉어내며 언변을 구사하는 능력을 내면에서 끄집어 내어 눌려 있던 사회성을 일깨워갔다.


고담준론을 풀어낼 능력도 관심도 없고. 반드시 지켜야 할 비밀도 없던. 무식해서 순수했던 그시절.

엷어진 일광 탓에도 마셨고, 돈이 없어도 마셨고, 까닭이 있어도 마셨고, 목적이 없어도 마셨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우리끼리는 더할 나위 없는 고담준론이었고, 비의를 담은 약속들이었다.

그 때는 그랬다. 친구 사이에 최량의 호칭이 '개새끼'였던 시절. 이유는 존재할 이유조차 없었다.


일상의 얼개는 찌그러져 갔다. 노천의 잔디 절반을 태워. 학우들이 붙인 대자보에 제명의 대상으로 지명 되기도 했고, 횡단 보도 한 가운데에서 배뇨의 기쁨을 즐기다가. 시대의 한 획을 긋는 개망나니에 등극하기도 했다. 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경찰차에 대차게 실려다니다 경찰서 구경도 제법 했다. 나흘을 내리 외박하고 노크 귀순을 시도하다가 엄마가 장전해 둔 설거지물에 대문 앞에서 온 몸이 취하기도 했다. 나는 반성하는 기계에 불과했으며. 그 시절 안 취할 이유와 못 취할 명분이 없었다.


때만 되면 비는 내렸고, 맺지 못한 인연들에 대한 짝사랑의 아픔은 끝이 없었으며, 기우고 덧대도 그 시절 시간은 신기하게 넘쳐 흘렀으며,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났다.


술에 대한 개념적 의미와 객관적 거리를 가늠해 보기 시작한 것은 서른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이유는 간단했다.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장면과 술집의 이름들이 점점, 자주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이 머리에 들어가면 비밀은 밖으로 밀려 나가는 법. 처음엔 그 법칙대로 흘러갔으나. 오랜 음주는 비밀의 가치도 없는 단순하고 가벼운 사실들조차 기억 못 하는 치매의 법칙들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반복된 익숙함은 새로운 다짐을 무디게 해주는 힘이 있기에 조심과 경계의 자세도 점차 물러져갔다.

서른이 넘으니 계절의 시의와 세월의 흘러감 자체에 더욱 예민해졌고. 지갑을 스스로 채울 수 있게 된 덕에 낭만을 자랑 삼아 새우깡에 소주 몇 잔으로 주취자 대오에 서는데 인색해져 갔다.


달라진 건 술과 안주의 종류만이 아니었다. 후드티를 입고 있던 친구들 대신 넥타이를 맨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것.

사회의 부조리와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 속에 각자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구체적 전망들을 짚어 주던 청신함에서, 외연이 정해진 관계 사이의 허위와 기만, 조직의 새콤달콤함과 공인된 인습에 대한 추상적 정보 등을 안주 삼는 혼탁함으로 술자리 주제가 바뀌어 갔다. 술자리에 대한 불편함과 주저함이 없지 않았지만 술의 본연성에 대한 충성도에는 변함이 오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술은 고여 있는 고름과 썩어 가는 환부를 소독하고, 보이지 않는 상처와 숨어 있던 죄의 씨앗들을 부드럽게 덮어 주고, 울분과 허무를 위무해주는 놀라운 액체로 작용 했으므로 나에게 술은 사회적 접착제로서의 독점적인 위치를 이어나갔다. 변함 없이 나의 친구들은 술을 통한 친구들이었고, 함께 취하며 가슴의 일부를 스치며 섞어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술집의 조명은 백열등이다. 화장실 조명 다음으로 각자를 예쁘고, 잘 생겨 보이게 해주는 조명은 술집 조명이며 그 등의 종류는 백열등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위하는 일상사에 찌들어 있는 미간의 주름들을 숨겨주고 몽롱해진 동공을 분위기 있게 해주는 광도는 그 조명하에서만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물론 백열등은 띄엄띄엄 매달려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술자리의 인원 수는 홀수이다. 짝수는 정과 반, 일반과 특수의 구분을 두게 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편이 나눠지면 취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명료한 사실과 관계의 분명함 사이에 고집과 꼼수가 개입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침묵과 사색을 곁들여 술 자체의 깊은 맛과 여운를 즐기고 상대에 대한 관조의 시간을 확보하려면 둘 보다는 셋, 넷 보다는 다섯이 좋은 법이다. 운이 좋아 외떨어진 테이블에 혼자 앉게 되어 눈 앞의 안주를 모두 내 몫으로 삼을 요행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숫자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술은 비 오는 날은 막걸리, 겨울에는 소주, 여자와는 맥주이다. 비가 오면 파전이, 겨울에는 회, 여자 앞에서는 덜 여문 기술이라도 써보아야하기 때문이다. 맥주집이 소주집보다 분위기는 적당하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술친구의 직급은 8급이다. 3급 이상은 만날 바가 없고, 4급은 만나기 힘들고, 5급은 만나면 어렵고, 6급은 만나면 부탁해야 할 것 같고, 7급은 만나면 일 얘기를 주로 하고, 9급은 만나면 술값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걷는 것에 힘이 들어 가고 관절이 안 좋아졌다고 여기던 차에 얼마 전 예약 진료를 받았다.

'앞으로 술과 담배를 끊으셔야 합니다. 몸무게도 7kg 정도는 빼셔야 합니다.'

관절과 근육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마흔 넘어서는 자유 보행이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더했다. 나의 지난 날을 단죄하려는 듯한 의사의 건조한 말투에 분기가 돋기도 했으나. 일관된 나지막한 음성은 달팽이관을 팽그르르 휘감아 주었다. 담담했다. 어떠한 처음이란 다 그러한 법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홀로 맞는 밤은 먹먹했다. 도사리고 있는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에 불어닥칠 관계 속에서의 한파가 두려웠다. 나의 모든 사회 활동의 근간과 시종은 술이었기 때문이다.

친한 지인들에게 일일이 문자를 보내고. 카카오 스토리에도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반응은 예상 외였다.

두려움과 걱정, 침울함은 나만의 몫이었고, 지인들의 반응은 축하와 응원, 오히려 잘 되었다는 반가움이 주를 이루었다.

나의 개인사를 점철했던 망나니즘과 알코올리즘에 대한 인과응보, 당연지사라며 이 참에 끊으라고들 했다.

내 생활의 규모를 재조정하고, 내 몫의 삶을 정신 차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격조 있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술과 담배를 끊으리라는 그 숱한 다짐의 종착점에 다다른 것 같은 비장함이 제법 깃들기도 했다.

잔이 비우면 채워야 하듯이 나의 일상의 각살이들도 이제 술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지 않을까?

술에 쓰던 그 뜨거운 진심과 가열찬 열정이라면 그 어떤 것도 완수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금욕의 아픔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진보의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의 복판. 애니팡과 대선의 시절이었다. 달이 차고 기울어감이 더욱 아득해 보이고 감성이 예리하게 돋는 계절, 가로 세로 그림을 맞춰 입장의 차이를 가늠해 보고 의견을 헤아려 보는 시절. 술 한 잔 곁들이면 적나라한 초조와 비밀을 풀어헤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그제도. 수원과 사당으로. 술을 찾아 발품을 뛰었다.

염치 없이 들어 앉아 있는 일체의 많은 것들을 비워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적시기로 했다.


영혼이 불안에 잠식되고, 눈동자가 공허히 열려 있을 때 그것을 잠재우고 비움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술 이외의 것을 제외하면 술 뿐이 아닌가 한다.

아무렴....12월 19일까지는 술 잔 없이 미지의 시간을 비우고 채우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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