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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기의 좋은 점 1.

브런치의 좋은 점

by 하니오웰


일요일이다.


선천성 불면증으로 나의 동공은 오늘도 새벽늪에 걸려 있다.

새벽의 장점은 온전한 내 의지로 시간을 유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하루 중 그렇게 밀도 있게 '나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은 부엌에서 가까운 방에서 딸이 자고 있는 관계로 꿀홍삼차를 옆에 두지 못 한 채 바로 노트북을 켰지만 일기를 쓰게 된 후로 나는 새벽이 소중해 졌다. 새벽이 지나면 아무래도 '관성의 시간'으로 빨려들어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고 나서 좋은 점


1) 순간에 감사하고 집중하게 되었다.


매일 한 꼭지씩은 써야 하기 때문에 '글감'을 찾는 버릇이 생기게 되고 세상 맥락의 흐름과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나 이야기를 좀 더 진지하고 세밀하게 보고 듣게 된다.

산만한 내가 내부적으로는 더 산만해졌지만 외부적으로 말수가 줄고 순간에 더 감사하고 집중하게 되는 좋은 버릇이 생겼다.


2) 브런치에서 새로운 프렌드십이 생겼다.


금주 34일 차에 운 좋게 3년 전의 낙방을 딛고 '브런치 작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일기를 쓰게 되면서 붙은 '끄적 탄력성' 때문이라 여긴다.

상대적으로 활자의 근처를 맴도는 장삼이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아마츄어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현란함보다 진솔함'이 베어 있는 글들이 많고 댓글에 대한 댓글도 '말초와 냉소'에 쉽게 기울어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서로를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러 주기에 막연한 막역함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3) 꾸준히 읽게 되었다.


인풋 없이 아웃풋만 일삼을 수 없고 입으로 뱉는 것보다 손으로 쓰는 것에는 아무래도 더 '활자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바 잠깐씩이라도 시간을 내어 뭐라도 읽게 된다.


4) 사소한 것을 넘기게 되었다.


나는 지방 세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일단 공무원 조직은 상대적으로 '에너지 레벨'이 낮아 '넥스트 레벨'에 대한 모색이나 전환적 사고가 부족하다.

2년에 한 번씩 세무서 간 정기 인사가 있는 세무서와 달리 건물 내, 층 내에서 세무직 2, 3개 과간 인사 이동만 있는 터라 구성원의 정기적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성찰적 접근' 보다는 해묵은 감정에 기반한 '관성적 마찰'의 형태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각자의 일상에 대한 과도한 가십적 접근'이나 '분별 없는 뒷담화에 대한 뒷담화적 고찰'이 횡행한다.

갈수록 사소한 것에 매몰되고 낮은 수준의 정치가 승리하는 것을 목도해 가며 '우물 안 자맥질의 세계'에 틈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곳이다.

나 역시 용렬하여 그 안에서 깊이 허우적 대며 살던 참이었는데 일기와 활자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개선되고 있다.

'사소한 사소함'에 대한 거리두기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5) 자존감이 고양 되었다.


나는 21년 째 세무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 아부지 다 철저히 문과 성향이고 나와 형 역시 숫자 계산보다는 언어의 조탁이나 배열에 더 재주를 가지고 있다. 21년간 사무실만 나오면 자존감은 꾸준히 하락 일변도를 유지하고 있다.


금주를 하게 되었고 그것을 지속하게 할 장치의 하나로 일기를 선택했다. 블로그를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했다. 신기하게 시나브로 조회 수가 늘어 갔고 책임감이 더해지고 있다.

'매일 읽고 쓰는 행위'를 하게 되며 나는 조금 더 잘 하고 싶은 '방향에 대한 지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추락하지 않으려면 항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자연스레 내 자존감은 이륙 중에 있다.


더 쓰고 싶은데 딸이 깼다.

일요일 아침이면 마늘과 딸을 그 곳으로 잘 보내드려야 한다.


벌써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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