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동생(두 번째 아픈 손가락)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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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점촌에서는 외할아버지와 엄마, 현숙 이모 셋이 살았다.

현숙 이모는 엄마보다 네 살 어린 동생이다.

머리가 워낙 비상해서 아이큐가 142가 나와, 학교 전체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꼽혔다고 한다.


담임이 '머리가 너무 좋아 걱정이니 집에서 잠을 더 재우라'는 말했다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외가 육남매 중 유일하게 서구적 이목구비를 지녔던 이모는, 어릴 적 별명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다.


취미 부자셨던 외할아버지는 현숙이 이모를 총애하셨다고 한다.

예쁘고 말도 잘 하니,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나 산에 그림을 그리러 갈 때 항상 곁에 데리고 다니셨다.

엄마는 집을 지키라며 두고 다니셨다고 하니, 분명한 차별이었다.

엄마는 나한테 섭섭했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하셨으나 말해 무엇하랴?


외할아버지는 동아일보를 구독하셨는데, 엄마는 국민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외롭고 무서워 그 신문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손에서 떼지 않으셨단다. 그 덕분인지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총애를 받았다.

반에서 선생님 말씀을 이해하고, 말대꾸까지 하는 사람은 엄마 뿐이었다.


'왜 그렇게 무섭고 외로웠냐'고 여쭈니 항상 '혼자'셨다고, 현숙이 이모는 집에 거의 없었다고 한다.

말주변과 재치가 좋아 온 마을의 사랑을 받는 아이였고, 늘 빨빨거리며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녀 별명이 '빨로꾸이'였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 그 지역에서 쓰이던 방언이 아니었을까 싶다.


외할아버지가 엄마한테 두부 심부름을 시키면, 이모는 남은 거스름돈을 자기한테 달라고 했단다.

엄마가 안 주면 엄마한테 식칼을 던지며 위협할 정도였다니, 성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옆 초가집 어르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이모는 곧바로 태세를 바꾸어 언니에게 살갑게 아양을 떨었다고 한다.

밖에서는 사랑받는 아이였지만, 가족한테는 갖은 포악을 일삼는, 아주 영악한 년이었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이모는 다재다능해 국민 학교 때 상이란 상은 다 휩쓰는 부모의 깊은 자랑거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가 중학교 1학년 때 집에 큰 불이 났는데, 마침 이모 혼자 집에 있었다.

그 불길 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이모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어졌다. 도벽과 폭식증이 생기고, 가는 곳마다 패악을 거듭했다.

급기야 가출까지 서슴지 않자, 결국 집 안에만 가둬버리셨다.


내가 어릴 적, 이모는 2주에 한 번쯤 언니 집으로만 외출 허락을 받았다.

점심을 함께 먹을 때면, 이모는 꼭 석이 형이 아닌 내게 슬쩍 물었다.

"오웰아, 엄마한테 오늘 저녁 뭐냐고 물어봐줘."


나는 이모가 좋았다. 짠했다.

어릴 때 이야기를 가끔 들려 주셨는데, 내용이 생생했고 재미가 있었다.

지금 든 생각으로, 즉석에서 지어낸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그 순간들에는 유독 이모 눈이 반짝 돌았다.


그래서 내가 보답으로 엄마 몰래 오백 원을 주면 이모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오웰아 내 나중에 돈 생기면 꼭 새우깡 사줄게. 나 돈 준거 엄마랑 외할아버지, 특히 외할머니한테는 절대 비밀이야"

그런 날 군포 집으로 돌아가는 이모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외가댁 골방에서 자취를 감춘 이모는 그 뒤로 30년 넘게 수원 어딘가의 장기 요양원에 머물고 계신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막내 외삼촌만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가셨는데 내가 몇 차례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 바람은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자존심이 유달리 세고 체면을 중히 여기던 외조부모님께 현숙 이모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안개가 되었고, 당신들께 두 번째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두 분 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둘째 딸 걱정을 놓지 못하셨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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