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니나 나나 병신이다. 하하하

by 하니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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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이 결혼한 이래 엄마는 마음의 균형을 잃어갔다.

적정의 곱절을 넘는 걸음량으로 적적을 덜어내려 관절을 깎아냈다.


평발인 엄마에게 족저근막염과 퇴행성 관절염이 차례로 왔다.

통증의 빚이 깊어질 때는 잠시 걸음을 줄였다가, 결국 다시 길 위의 객으로 나섰다.


결혼 직전 잠깐 최량의 효자였던 2~3년,

나는 엄마와 주말마다 서오릉 길이나 불광천 길, 은평 도서관 길을 걸었다.


어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내가 앞으로 걸으면, 엄마는 바짝 뒤에서 따라붙으며

"왼발!, 왼발!" 하고 구령을 외치셨다.

오른쪽 보다 짧은 왼다리 탓에 나는 불균형, 비직립일 수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정균형, 완직립을 바라셨다.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을 강요하는 엄마에 대한 적의와 반감이 한가득이었다.

세월이 들수록 반항은 적나라해졌고, 고등학교 때쯤엔

"왼발!" 한 마디만 나오면 나는 일부러 뒤로 빠졌다.


엄마는 속절없었고, 나는 끝내 제 멋대로였다.

참 못된 아들이었다.


이제는 그런 풍광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 휴가를 내고 하루 종일 '지갑을 잃어버린' 엄마와 뒷 일을 보러 다녔다.


"야야, 이제 니나 나나 병신이다. 육갑 모자 완성이다. 하하하"


오른 다리를 더 절뚝이는 엄마, 왼 다리를 더 절뚝이는 나.

우린 이제야 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


엄마의 기억이 든든했을 때 부드러운 바람을 마주 맞고,

꼿꼿한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며 다정한 길들을 더 밟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부모의 세월은, 자식의 세월보다 결코 느릴 수 없다.

덜 늙을 수밖에 없는 우리네 자식들은,

시간의 위대함을 뒤늦게서야 조금 알아차린다.


그 어찌 아쉽지 않으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풍경이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부디 나는 계란 껍데기보다 단단히 엄마를 안아 드릴까?

결코 나는 왼 뒤꿈치의 타력을 키우려,

엄마보다 이른 새벽에 다리 찢는 운동을 시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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