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점촌에서 자랐다.
1950년생이다. 그 해에 일어난 큰 사건에 대해 여러 번 물었지만 기억을 못 하신다. 당연하겠다.
엄마는 몸은 약했는데 입맛만은 단단했다.
밀가루 음식이 귀하던 시절, 보리밥 한그릇에 고추장 한 숟갈만 있어도 세상 행복했다.
저녁이 오면 아궁이 연기가 피어 올랐는데, 그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불을 때우던 일이 참 서러웠다.
세살 위 오빠는 장남이라 늘 열외, 바로 밑 여동생은 빨로꾸이, 편애의 대상이라 손에 흙 묻힐 일이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엄마가 했다는 일이라는 게 그리 별스로와 보이지는 않는다.
'엄마, 그 일 말고 다른 일은 뭐 했어?'
'안 했지, 난 어릴 때부터 활자 중독이었어, 사람들이랑 마주치는 게 무서워서 그 안으로만 숨었었어. 나머지는 할아버지가 다 하셨어'
부지런한 외할아버지는 마당 구석마다 꽃을 일구셨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봉선화와 채송화가 환히 피어 집을 감싸고 있었고, 엄마는 그것을 보며 아득한 외로움을 견뎠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말더듬증이 심해, 누군가와 마주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렸다.
여동생은 항상 놀렸다.
"야, 이 문디야 또 어버버 하나? 숨 안 넘어가나?"
속이 타서 죽이고 싶을 만큼 분했지만, 앞뒤가 다른 무서운 동생의 등살 앞에 엄마의 말은 더 절뚝이며 짧아져 갔다.
장 날의 끝자락, 가끔 유랑극단이 찾아오곤 했다.
엄마는 해가 완전히 저문 뒤, 밤 여덟 시쯤 몰래 집을 나서곤 했다.
집에서 장터까지 가는 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무서운 논두렁 길을 홀로 걷고 있으면, 어느새 집의 백구가 뒤를 따라와 곁을 지켜주었다.
"얘, 너는 집에 가야지. 너까지 나와서 나 들키면 어카니? 돌아가 훠이훠이~"
백구는 찰떡 같이 알아듣고 매번 돌아갔다.
그 신기한 기특함을 곱씹으며 몇 걸음을 더하다 보면 어느새 장터에 다다랐다.
도착해봐야 끝물이었지만, 그 마지막 웅성거림만으로도 엄마는 행복했다.
신기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인파 속에서 빠져 나오면 다시 외길이 나오는데, 더 짙어진 밤의 시커먼 길 위에는 언제나 백구가 동그마니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터질 듯한 반가움과 안도감에 와락 끌어안으면, 백구는 기다렸다는 듯 혀를 날름이며 팔과 얼굴을 번갈아 핥았다.
돌아오는 길,
백구가 저만큼 앞서갔다가 뒤돌아 기다리면, 서늘한 밤바람도 함께 머물러 주었다.
그 시절, 엄마의 단 하나의 친구는 백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