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패키지다.

by 하니오웰




자식으로서의 나는

시작부터 종합은커녕, 선물용이 되지 못했다.


외관은 그럴듯했으나, 오장 발육이 더뎠고,

하지 불수의 명료한 전망을 안고 태어났다.


다섯 살 때까지 홀로 일어서지 못해,

어미의 숨통을 조였다.


연년생 형이 있어 엄마는 이미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빛나던 젊음을 단숨에 잃을 운명은 아니었다.


'나' 자식의 출생은,

구체적 구속 앞에서 추상적 자유가,

얼마나 속절없이 멜 없어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바퀴벌레처럼 발발발 잘도 기어 다니며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바지는 사흘이 멀다 하고 닳아버렸다.


형도 먹을 걸 좋아했지만,

내 뻐끔질에 견줄 바가 전혀 못 되었다.


어딘가에서 의자를 끌어와,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를 마술을 부려

찬장 속 과자를 기어이 꺼내 먹었다.


다른 구강도 발달했다.

둥지에 누워 뻐끔대는 새처럼,

허공에 온갖 요설을 쏟아냈다.


말이 빨랐던 형보다 단어의 가짓수와, 발화량이 곱절이었다.

꺾인 몸의 기세를 혀의 돋움 질로 메우겠거니 여기셨단다.

굶주림의 일환이었다.


아비는 수많은 벗들을 거느린 채,

다르지 않은 낯선 객으로만 가끔 집에 들렀다.


그들의 지갑을 얇게 펴주는 재주는

'바퀴새'의 몫이었다.


상황에 맞는 스무 대답과

반전의 묘를 뽑아내는 재주가 있어

아비의 외상값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바지삯을 했다.


자식은 패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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