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웰 미모] 감수성을 잃는 순간,

by 하니오웰

1. 기상 am 6.45

어젯밤
홍대 가서 인형 뽑기를 한다고 오만원을 넘게 쓰고 왔다.
인형 네 개를 들고 돌아왔지만
결국 셋 다 각자의 사정으로 기분이 상했다.

소비의 끝은 대체로 그러하다.
불쾌감과 죄책감이 남아 헤매다 보니 새벽 두 시가 넘었다.

허둥지둥 잤다.
잠깐의 웃음은 남았다.

2. 독서('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p. 192


'현대의 다단한 문명을 만들기까지에는 권태에 대한 두려움이 큰 몫을 담당했다. 권태롭다는 것은 삶이 그 의미의 줄기를 얻지 못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거기에는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싫증이 있을 뿐이며, 새로운 것의 번쩍거리는 빛으로 시선의 깊이를 대신하려는 나태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제 깊이를 지니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는 인간은 세상을 살지 않는 것이나 같다.'

T : 권태는 공허다.

그 공허를 견디지 못해 늘 새로운 것을 찾지만,
새로움은 다른 새로움 앞에서 공허하게 낡아버린다.

감수성을 잃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살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만 남는다.

어젯밤,
우리 가족의 홍대 풍경과
윗 문장은 잘 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