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문법

by 하니오웰

"비극은 남의 것을 대신 체험할 수 없고 단지 자기 것밖에 체험할 수 없는 고독한 1인칭의 서술이라는 특질을 가지며, 바로 이와 같은 특질이 그 극적 성격을 강화하는 한편 종내에는 새로운 ‘앎’, ‘아름다움’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비극은 우리들이 무심히 흘려버리고 있는 일상생활이 얼마나 치열한 갈등과 복잡한 얼개를 그 내부에 감추고 있는가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우리를 객석으로부터 무대의 뒤편 분장실로 인도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식평면(認識平面)을 열어줍니다.

열락(悅樂)이 사람의 마음을 살찌게 하되 그 뒤에는 ‘모름다움’을 타버린 재로 남김에 비하여, 슬픔은 채식(菜食)처럼 사람의 생각을 맑게 함으로써 그 본질에 ‘아름다움’(知)을 일으켜놓습니다.

새해란 실상 면면한 세월의 똑같은 한 토막이라 하여 1월을 13월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만약 새로움이 완성된 형태로 우리 앞에 던져진다면 그것은 이미 새로움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모든 새로움은 그에 임하는 심기(機)가 새롭고, 그 속에 새로운 것을 채워넣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주어지는 새로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비극의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는 억울함을 나는 스무 살 언저리까지 강하게 품고 있었다.

이 글은 내 안에 '비극'에 대한 인식의 좌표를 바꿔주었다.
비극만이 인간을 진정으로 제자리에 세워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는 안다.
나의 장애와 불균형은 나만의 고유한 명사, 나의 훈장이 된다는 것을.

주어진 불확실성의 무게는 때로는 나를 주저앉혔지만, 그 무게의 변주 덕에 나는 또 일어났다.
그것이 나의 문법이 되었다.

희극은 순간의 기쁨에 머물지만, 비극은 마음을 맑히고 생각을 깊어지게 한다.
비극에 헝클어져 무너지지 않을 혼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성찰이라는 응답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지금도 그러함을 믿고, 꾸역하게 살고 있다.

삶은 희극의 나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두터운 비극의 흩뿌림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