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은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며 글을 쓰는 일상을 실천했다.
다섯 가지 '지적 자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지식의 기본이 될 기초체력인 ‘꾸준한 배움’을 내면에 담아야 하고, 실용적 삶의 기준이 되는 ‘밝은 안목’을 갖춰야 한다. 이어 불가능의 경계를 허무는 ‘말의 내공’을 배워야 하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분명하고 명쾌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돕는 ‘지적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그럼 마지막으로 ‘단단한 내면’을 더해서 더 큰 자신을 만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가질 수 있다.
이런 다섯 가지 지식 자산이 일상의 글쓰기와 맞물리면 자연스럽게 오십 이후의 삶은 자유롭게 빛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다. 순서가 바뀌면 삶도 바뀐다. 다섯 개로 나눈 삶의 태도가 순서에 상관없이 놓인 것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오십에 시작하는 마음 공부' 김종원
30대 초반 고미숙 작가가 쓴 연암의 책을 재미 있게 읽었는데 내용은 단 한 글자도 기억나지 않는다.
남은 것은 느낌.
연암.
제도나 정형에 멎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유머독스하게 살았던 인물이라는 희미함이 있다.
윗 글을 읽으니 치열한 자신의 문법을 지닌, 비전 있는 노마드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처럼 균열의 틈을 즐기고, 역설의 자유를 유영하는 글을 쓰고 싶다.
단지 기록의 공치사가 아니라,
미학적 열정을 담아 역사에 소명하는 글을 쓰고 싶다.
당장은 아니다.
깜냥도, 상황도, 택도 없다.
배움은 언제나 진선진미를 향한 바탕이 된다.
배움이 부족하면 생각이 얕아지고, 그러면 흔들릴 것이다.
매일 읽고, 지우고, 고치며 생각에 질서를 놓고, 결을 두어야 할 것이다.
안목은 숟가락으로 진실을 덮는 시력이 아니라, 용감한 통찰의 조리개를 열 때 열릴 것이다.
높이를 재기보다, 깊이를 들여다 보야야 키워질 것이다.
얼핏 기억하기로 이 책의 저자인 김종원 님은,
좋은 책 한 권을 백 번 읽는 것이 안목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던 것 같다.(아님 말고)
세상을 얇은 눈과 두꺼운 시야로 훑으며, 마음과 마음 사이의 고리를 이어보아야 안목 해변에 닿을 것이다.
말은 요실금처럼 허무하게 흘러내린다.
의도는 차올랐는데, 끝내 문장에 닿지 못하는 말들이 많다.
말의 내공을 쌓으려면 다져야 하고, 다지려면 써야 한다.
필사도 이제 해보련다.
필사의 묘력을 늦게 나마 조금 알게 되어 좋다.
오십 전에 알게 되어 더 좋다.
오십은 아무래도 좀 지친다.
삶을 응시하고, 생을 글칼로 자꾸 떠봐야 판단력, 사고력이라는 것이 구조화될 것이다.
어떻게 솔직하고, 무엇을 은밀히 감춰야 글이 너덜너덜 살아 숨쉬는지 조금 알겠다.
허벌나게 혼탁, 복잡한 세상, 똑똑하고 명료한 선택 몇 개쯤은 해보고 죽고 싶다.
배우고 마음의 눈을 뜨고, 말의 내공을 다져 두텁한 판단 쌓다 보면
단단한 내면이 썰물처럼 스미는 날 오겠지.
꾸준히, 솔직히 쓰다보면
나를 기다리는 문장 하나 만날 날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