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공무원교육원 입교

by 하니오웰


2004년 11월.


2005년 1월부터 ‘국세공무원 교육원’에 입교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생각보다 빠른 연락이었다.

처음부터 인사과와 사무실에 고지했던 사실이라, 사표에 주저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국가직과 동시에 붙은 지방 세무직들이

거의 예외 없이 환복하는 분위기였다.

선택의 여지는 '지방색을 묻히고 오느냐 마느냐' 정도였다.


'국가직 = 성공, 명예, 미래가치',

'지방직 = 안정, 생활 중심, 잔류'

그런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우리는 부모 말을 비교적 잘 따르던 X세대였다.

부모 세대들의 국가직 우위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위계와 관', '수직과 체면' 중심의 사고가

지금의 부모 세대들보다 훨씬 강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2014년 지방직으로 교류해 옮길 때, 엄마는 침통했다.


요즘은 반대다.

지금의 Z세대들은 조직보다 개인, 현재가치, 워라벨을 우선 삼는다.

동시에 합격할 경우, 국가직으로 잘 가지 않는다.


석 달을 채우지 못한 근무 일수였다.

그 시절, 나는 극 ENFP 였으나 사무실에선 합죽이였다.

'굳이' 와 '뭔가'가 머릿속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2004년에 용인시청에 합격했던 세무직 다섯 명중 세 명이 국가직 동시 합격이었고,

모두 함께 사표를 내면서, 사무실 분위기는 침통했다.

아마 송별 회식은 했을 것이다.


수지에서의 석 달은 스냅에도 못 담길 희미함이지만,

소중함으로 남아 있다.

내 공무도하가의 가장 짧았던 첫 절이었다.


지금은 제주도 서귀포로 옮겨 간 국세공무원 교육원.

그 때는 수원시 파장동, 옛 세무대학교 건물을 그대로 썼다.

교육은 3개월 과정이었고, 전원 합숙이었다.


2인 1실이었고 나에게 배정된 방은 유난히 넓었다.(장애인 우대)

룸메이트는 동갑내기 부산 친구였다.

목소리가 걸걸했던 친구는 90일 내내,

단 하루로 어긋남 없이, 실려 들어오는 나에게 소리쳤다.


"이 초빼이 새끼야, 좀 작작 마시라 안 카나!."


극상의 E.

나는 서울 팀의 중심이었다.


심장은 리듬을,

간은 박자를,

뇌는 나를 잃었다.


늘 들떠 무너졌고, 부풀어 일어섰다.

담배는 필터를 한껏 끊어 피웠고, 혀를 흥청이며 말아 껐다.

입으로 잔을 다물어 원샷하고, 입에서 떼지 않고 물은 채 채워달라했다.

잘 나가는 븅신이었다.


출석은 했다.

출구 없는 초빼이.

별똥별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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