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것만 말하라 했다. 하하하.

by 하니오웰
키재기.jpg


엄마의 밤은 형이 지키기로 했다.

불면대장 막내의 밤을 지켜주려, 엄마는 굳이, 개굿하게 진천에 사는 형아를 불렀다.


"형 지하 2층 응급의료센터에 가서 보호자 등록하고 올라와야 해."

"어, 뭐 사갈 건 없냐? 알잖아, 있겠어? 이현희 여사가 주전부리 키우겠어?"


형은 밤 아홉 시 반쯤 왔다.

오랜만인데, 그보다 살이 좀 쪘다.

엄마는 코코낸내 중이라 조용히 나왔다.


다음 날 새벽 여섯 시에 가보니 침대가 피범벅이다.


"형, 뭔 일이래?"

"어, 피가 역류한 것 같아. 엄마 혈관이 얇아서 그럴 수도 있고"

"뭐야. 어제 그 남자 간호사 좀 불안 불안하더라, 손을 막 떨더라고. 바늘 잘못 꽂은 거 아닌가 싶었어..

열받네. 따졌어?"

"뭘, 따지냐? 됐어, 그럴 수도 있지. 너 나 간 뒤에 혹시 간호사한테 따지지 마라."

"생각해 보고."


형은 매양 그렇다.

일이 터져도 목소리를 낮추고, 억울해도 남이 먼저다.

불합리하면 따져야 하고, 상대가 잘못했으면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마음보다 발을 늘 먼저 뺀다.

'미안해요, 죄송해요'가 습관보다 깊이, 몸에 박혀 있다.


인생 전체를 그렇게 살아왔다.

한결같이 앞서 내어주고, 먼저 잃어버렸다.

긴 수험의 터널과 실패한 결혼이 그 골을 더 넓고, 더 깊게 파버렸다.

돈을 다 퍼주고, 관계는 다 잃었다.


오로지 엄마랑, 나한테만 유독 강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강한 엄마와 동생 앞에서 버티려는 방어였고, 결국 양보였다.

같이 살 때 '좀 받아줄 걸'하는 후회가 요즘은 자주 든다.

나를 혼내러 부르고는, 정작 울어버리는 형을 내가 달래 주고 나왔던 기억뿐이다.


그래서 참기로 했다.


형이 갔다. 엄마가 깼다.


"엄마, 피 많이 흘렸어? 안 아팠어?"

"아, 피 많이 났지, 그런데 아가. 여기 정말 좋다. 그 피를 다 닦아준다. 화 한 번 안 내고"

나는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편의점에 내려가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702호 이현희 환자분 보호자 되시죠? 빨리 올라올 수 있으세요? 교수님 회진 오셨어요."

운 좋게 의사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어머님 상태는 괜찮습니다. 밤에 출혈이 조금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됐어요.

오전에 인지 검사 들어갑니다. 불안해하실 수 있으니, 검사 전에 손 자주 잡아드리세요.”

"네, 교수님 혹시 나중에 처방해 주실 때, 약이 아니고 영양제라고, 꼭 드셔야 한다고 부드럽게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그럼요. 그런 경우 많습니다. 제가 부드럽게 잘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기분 잘 맞춰드리고 계세요.

마음이 편안하면 뇌의 긴장도가 낮아져 언어 표현, 기억 회상 정도가 좋아지거든요."


회상 정도가 좋아지길 바라지 않아, 엄마를 일부러 건드려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병실에 들어가니 엄마가 아침을 드시고 있었다.


"야, 여기 밥이랑, 반찬이 다 싱겁다.

동태 쪼가리가 왜 이리 작냐, 뼈에다 살 갖다 붙여 조립한 거 같다."

"엄마 맛은 어때?"

"맛은 좋지, 네 아빠가 나한테 맛없는 것만 말하라 했다. 하하하"


따뜻했다.



이전 10화엄마는 컴퓨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