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입원 첫날이라 배식이 없대요. 저녁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는 원래 밤 10시가 넘어야 먹잖아. 너 먹고 와라."
"엄마, 여기 병원이에요."
간호사 분에게 물어보니 이 큰 건물에 식당은 없고,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사 와야 한단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난 소고기는 절대 안 먹고, 빵은 싫다."
"치킨은요?"
"싫다."
"라면은 안 드실 거고.. 김밥 어때요?"
"싫다. 김밥 안 먹는다. 과일도 싫다."
"알아서 사 올게요"
"너 살쪘다. 과식하면 안 된다."
지하 2층에 내려가니 빵집이 있다.
고로케와 연유브레드 하나씩을 몰래 먹었다.
고심 끝에 비빔밥 두 개를 집는다.
병실 문을 여니 엄마는 다른 세상이다.
"우리 아들이 날 병원에 데려왔어요. 더울까 걱정했는데 온도가 좋아요."
"엄마, 식사 중이시잖아요. 비빔밥 사 왔어요. 휴게실로 가요."
"야, 밥이 안 익었다. 나 다시는 병원에 안 온다. 아까 간호사가 와서 내일 핵 뭐시기 검사하러 간다 했다.
알지? 내가 핵 싫어하는 거. 약도 안 먹을 거다."
알아보니 뇌 PET 검사였다. 검사과 이름이 '핵의학과'였을 뿐이다.
"엄마, 우리 여기 오기 전에 엄마랑 저랑 형이랑 수십 번 약속한 거잖아요.
가서 검사 잘 받고 약도 잘 챙겨 먹기로 하셨잖아요."
"난 하나도 기억 안 난다. 도대체 니들은 날 뭘로 생각하는 거니? 나 멀쩡하다."
"엄마야말로 왜 그러세요? 도대체 자식들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울분이 솟구쳐 더 이상 밥을 삼킬 수 없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야, 어디 가냐. 밥이 엄청 남았다. 한 톨도 남기면 안 되는 거야."
"엄마, 밥이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형 진천에서 올라오고 있는 거 아시죠?
저는 잠자리 바뀌면 잘 못 잔다고, 굳이 형 올라오게 하셨잖아요. 기억하세요?"
"난 모르는 일이다"
엄마는 입술을 씰룩이다가, 아랫입술을 앙다문다. 입꼬리가 떨리다가 이내 굳는다.
익숙한 표정이다.
분기를 누르러 한 바퀴 돌고 오니, 내가 두고 온 밥을 엄마는 웅크려 지지리 드시고 있다.
'아 정말, 엿같다.'
순간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국민학교 3학년이다. 하니보다 어리다 생각하고 다시 말해보자.'
숨을 고르고, 우선 엄마를 병실로 데리고 온다.
"엄마, 맛있게 드셨어요? 휙 나가서 죄송해요. 저도 참 못 됐죠?"
"아니다. 너 착하지. 맛있게 먹었다."
"엄마, 근데 잘 들어보세요. 제가 이번 달에 벌써 휴가만 사흘을 썼어요.
엄마 저번에 지갑 잃어버렸을 때, 그리고 대전에 부동산 거래 때문에 저랑 다녀온 거 기억하세요?"
"아니, 모르겠다."
"기억은 못 하셔도 다 있었던 사실이에요.
엄마 근데 저희 사무실 분위기가 엄해요. 그리고 요즘이 1년 중 제일 바쁠 때에요.
자꾸 쉬면 근무 성적이 안 나오고, 사무실에서 왕따 당해요. 제가 그리 되면 좋겠어요?"
"안 되지. 당연한 얘기를 왜 묻냐?"
"엄마가 약 잘 드시고 두 아들 말씀 들어주셔야 제가 더 쉴 일이 안 생겨요. 이제 남은 휴가도 없어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울 엄마.
"그럼 내가 약 먹으면 되냐?"
"네 엄마, 약이 아니에요. 영양제예요. 머리에 좋은 비타민이래요.
그리고 엄마, 아까 말씀하신 '핵 들어간다는 거', 그거 진료과 이름이에요.
핵 하나도 안 쓴대요. 제가 아까 그거 확인하러 다녀온 거예요."
"그러냐? 그래 다 할게. 약도 먹을게"
순한 목소리, 순식간이다.
점점 로그아웃이 금방이다.
엄마는 배시시 웃으며 오랜 버릇인 트림 흉내를 낸다.
몇 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장난치시더니, 이내 잠이 든다.
엄마의 한때 별명은 '컴퓨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