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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과 일기

by 하니오웰


내 딸은 11살.

우리 부부는 매일 번갈아 가며 딸 방에서 딸을 안고 잔다.

어제는 내 순번이라 신이 났고 10시 40분에 같이 누웠다.

이틀 연속 3시간 정도 밖에 못 잔 나는 바로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 2시 50분. 평소보다 넓어진 간극에 눈을 떴다.

분명 다시 자보려 했는데

옆에 딸이 없다.

거의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라 깜짝 놀랐다.

다행히 안방에서. 엄마 옆에서 잘 주무시는 중이시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2011년, 외할머니는 2023년에 돌아가셨다.

두 분 다 몇 십년간 수면제를 드셨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말씀을 참 자주하셨다.

"네 외조모는 너무 오래 수면제를 드셔서 잠을 잘 못 들이시는거다.

나는 수면제를 절대 먹지 않을 것이고 너 또한 그리 살아야 한다."


엄마는 분명 제갈량이 아니다.

유언도 아니었는데 밤마다 참 장엄하셨고 거창한 출사표처럼 진언하셨다.

진청색 개구리 성향이 2만 퍼센트인 나는 그 때마다 '나중에 꼭 먹어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 한 번도 실행은 하지 않았다.


유전병의 힘은 무서웠다.

나와 외조부모와 모친은 한 단어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주는 완벽한 힘이란.


첫째, 잠을 쉽게 못 들인다.

난 그저께 분명히 세 시간도 못 잤다. 어제 침대에 누워 30분 넘게 잠을 못 들이다가 어제의 일기를 신새벽에 길어올렸다. 그래서 나의 일기는 주로 그 전날의 상황에서 시작한다.

누우면 거의 바로 잠드는 그녀들이 언제나 부럽다.

나와 다른 내 딸을 참 다행이라 여긴다.


둘째, 잠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다.

잠들었다 깼다를 매일 밤 5회 이상 반복된다.

길면 두 시간, 짧으면 한 시간씩 잘려서 잔다. 간극 속의 삶이 괴롭다.

누우면 내가 심하게 어슬렁거리지 않으면 아침까지 깊은 잠에 드는 그 여자들이 참 부럽다.

나의 긴 몽유를 담아 내기엔 집이 많이 좁다.


셋째, 잠을 너무 쉽게 깬다.

아주 가끔 마늘이 화장실 가는 소리에도, 딸의 흠냐 소리에도, 천둥을 동반하지 않은 작은 빗소리에도 깬다.

그래서 나는 전 날 밤을 거의 세운 날. 다음 날 출근 점검이 있어도 알람을 해 놓고 잔 적이 없다.

출근 점검에 걸린 적은 더더욱 없다.

친구들과 놀러간 펜션. 그날 밤 연주가 시작되면 나의 동공은 긴 새벽을 관통하며 허공에 우두커니 서 있다.

놀러 간 곳 마다 새벽 운치는 나만의 것이고 그 전유가 나는 부지런히 싫다. 나의 가족은 놀러가서 일출을 보고 싶은 날에도 알람을 맞춰 놓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알람은 기상용이 아니고 그 날 꼭 해야할 일들을 알려주는 메모장 알림의 기능으로 항상 쓰인다.


나의 수면을 찌르고 있는 이 불면의 삼각형은 언제나 정삼각형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삼각형에서 벗어날 방법은 49년 째 요원하다.

불면 삼각형은 어김 없이 나의 밤과 새벽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준다.


탄핵 이후 나의 새벽은 온갖 슬라이스한 유튜브 시청으로 점철되었었는데.

금주를 시작한 이후. 일기를 쓴 이후 많이 충만해졌다.

다시 잠을 들이는데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건 아닐까 고민해 본 적도 있는데 그 고민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의 삼각형의 총합은 언제나 무슨 수를 써도 소용 없는 180도를 잘 유지하기 때문이다.


불면의 새벽 등정을 통해 매일 조금씩 길어 올리며 일기를 쌓아 올리는 과정은 참 소중하다.

일기를 쓰게 된 시점과 브런치 스토리에 입문한 시절이 공교롭게 큰 틀에서 점점 비슷해 지고 있는데.

그 날 이후 브런치 작가님들의 새삼스럽지 않은 새삼스런 필력에 감탄하며 인간의 최대 비극인 '비교의 늪'에 자꾸 빠지고 움츠려 들기 일쑤인데 그러지 말아야겠다.


나의 일기의 가장 중요한 목적들은 '금주의 지속'과 '딸에게 남기는 기록으로서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매일 쓰며 철자법과 단어의 정확한 뜻을 확인하는 것 자체만으로 충일감을 준다.

어제의 나랑만 비교하면 되겠다.

오늘의 일기는 이 정도면 되겠는데 오늘의 불면증은 이 정도에서 만족을 하려나?


덧 : 생각해 보니. 2023년 1월 수면 유도제를 먹어 본 적이 있다.

다리 수술 후 복직을 하였는데 '좋지 않은 예후와 익숙한 지겨움' 때문에 대인 기피와 공황이 왔었고 도저히 잠을 들일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신경정신과에 간 적이 있다.

나는 주로 솔직한 사람이고 이 커밍 아웃이 나중에 법정에서 쓰일 일은 없기를 바란다.


덧의 덧 : 한 시간 전 아가가 내게 돌아왔다. 아빠가 먼저 잠들어 갑자기 무서워서 갔단다.

폭 안자 주니 이내 잠이 든다. 내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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