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는 OK, 일단 OK다.’

by 하니오웰


글쓰기는,

햇빛 터지는 대낮의 한가운데서 균형을 잃은 절름발이의 내딛음이다.

핏발 선 목젖으로 허공에 몸과 마음을 내맡겨 흔들려 보는 일이다.

어디든 좋고 무엇이든 좋다.

부러진 손잡이에라도 닿는 순간, 손톱 저리게 움켜쥐는 일이다.


나는 몇 달째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남기고 있다.

전문성도 해박함도 부족하지만, 마음의 온기를 담아 쓴다.

뒷간 나들이하듯 툭툭, 손끝 터지는 대로 쓴다.

무거운 유용함이나 가벼운 무용함이 아니어도 좋다.

쓰고 나면, 그것은 나만의 시간의 집이 된다.


나의 글쓰기는 ‘쉽게 쓰여진 시’에 가깝다.

나는 안다.

내가 시를 쓰지 못 함을, 번개를 품지도 천둥을 내리지도 못 함을,

그래서 나는 산문주의자이며 리얼리스트다.

짧은 독서량, 빈약한 어휘력, 서툰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어를 골라 문장 사이에 바루어 놓는 일이 즐겁다.


글쓰기는 나에게 옹호의 행위다.

태어날 때부터 몸은 직립하지 못했지만, 마음의 직립은 포기하지 않았다.

편견과 맞서며 다져진 섬세함과 결기로, 나는 글로서라도 인간의 존엄을 끝내 옹호하고 싶다.

포승줄에 묶인 아버지, 수평의 위선에 수직의 말칼로 맞서던 엄마가 스민 나는 진실과 정의의 규명에 대한 기질적 편향이 있다.


나는 인간의 허위를 즐겨 살피는, 그 사이의 글을 쓰고 싶다.


‘무엇이든 써도 되지만, 아무거나 써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글쓰기의 첫 번째 조건은 ‘솔직함’이다.

진심은 진심을 건드린다.

글은 화자의 솔직함의 정도에 따라 춤춘다.

꾸며 쓰면 글이 삐쳐 숨는다.


두 번째는 ‘꾸준함’이다.

쓰기 싫은 날에도 세 줄은 쓴다.

그 세 줄이 다음 줄을 부르고, 그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린다.


읽기와 쓰기는 다르다.

읽기는 삶을 채워가는 방식을 바꾸고,

쓰기는 삶을 이해하는 깊이를 바꿔 놓는다.

읽기가 ‘답’이라면, 쓰기는 ‘질문’이다.

읽기가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라면,

쓰기는 새로운 책을 여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치유하는 일이며,

내 안의 샘물을 길어 올려 세상과 나를 다시 적시는 일이다.


나는 앞으로도 주로 산문에 서 있을 것이다.

추상보다 구체를, 형식보다 진심을, 이념보다 인간을 쓰고 싶다.

세상 사이의 미묘한 불편의 틈을 읽어내고, 그 안에 아직 남은 따뜻함을 붙잡아 쓰고 싶다.

손끝이 아닌 마음끝으로.


그래서 나는 쓴다.

문장이 비틀려도, 방향이 흔들려도 괜찮다.


‘나의 글쓰기는 OK, 일단 OK다.’

그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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