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의 태명은 둥글게 잘 자라라고 '라미'였다.
라미가 백일 무렵이 될 때까지 난 뭣도 아니었다.
아기가 가장 가볍던 시절에도, 나는 함부로 안을 수가 없었다.
아기가 땅에 떨어져 머리가 찌그러지면 ‘그 찌그러진 두상 그대로 아이가 큰다’는 말이 무서워,
아기 띠를 두른 마늘 주변만 맴돌았다.
두 살이 되고, 세 살이 되면서 하니의 머리는 점점 단단해졌다.
그 경도를 믿고, 출타한 마늘 대신 아이를 재우려 카시트에 눕혔다.
아이를 어루만지고 싶어, 남들이 미쳤다 했지만 카시트를 조수석에 설치했다.
동네 몇 바퀴를 돌면 잠들던 아이는, 잠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거리를 요구했다.
북악 스카이까지 돌고 온 적도 있었다.
왼손으로 운전대를, 오른손으로는 아기 가슴을 두드렸다.
아무튼, 어떻게든 새근거릴 때까지 돌았다.
카시트에 파묻힌 아이를 살그머니 안아 올려 엘리베이터를 타면 70% 공정이 진행된 셈이었다.
이렇게 찬란하게 예쁜 딸이 이런 부족한 내게 안겨 잠든 모습은 늘 경이로웠고,
혹 떨어뜨릴까 두려워 매 번 조마조마했다.
무릎으로 무게를 나누고 한 손으로 대문을 열었다.
신발을 조심스레 벗고 안 방 침대에 눕히고 나면 온몸이 흥건했다.
자주 눈물도 났다.
한 번도 떨친 적은 없으니 참 곡예한 아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