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 화도, 다시 보자.

by 하니오웰


딸내미 성장 억제 호르몬 주사를 맞히는 날이라, 마지막 남은 하루 휴가를 냈다.

"아가, 내일 아빠랑 삼청동 수제비 갔다가 주사 맞으러 가자"

"아빠, 그러지 말고 집에서 주토피아 1편 보자"

"엉"



푹 재우고 싶었는데, 마누라 출근 준비 소리에 뒤척이던 딸이 아홉 시쯤 일어난다.

배달 팝콘을 먹으며 두 손 조몰락 거리며 즐감했다.

둘 다 기분이 반짝반짝.


숙제를 하기로 했던 딸이, 응아를 하러 가는 내게, 잠깐 게임부터 하겠단다.


꾹.


화장실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다 치르고 30분 만에 나왔는데도 게임 중이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아 서재방으로 들어와 마음을 골랐다.


꾹. 꾹.


"하니야, 숙제하고 병원 가면 기분이 상쾌하지 않겠니?"

"응! 내가 왜 이리 오래 했지? 미안"

바로 하던 게임을 끄고 숙제를 시작한다.


긴긴밤 2회독에 푹 잠겨 있는데, 안방에서 아이의 짜증 소리가 계속이다.

숨을 또 고른다.


꾹. 꾹. 꾹.


"아빠, 남은 숙제, 병원이랑 학원 다녀와서 하면 안 돼?"

짜증을 참고 물어본다.

"왜?"

"너무 어려워서 그래"

"그려, 근데 그 문제가 뭐야? 같이 보자"

아이는 평소와 매우 달리 바로 화를 안 내는 아빠를 잠깐 스쳐본다.

기분을 이내 되돌려 마저 문제를 푼다.


"아가, 두 시에 출발이니까, 그전에 영상 잠깐 찍던지~"

"그래."

아이의 기분이 들썩인다.

"근데 있잖아, 두 시에는 바로 출발해야 하니까 옷 갈아입고 치카 해놔요."

"네!"


기적은 어렵지 않다.

그리 어렵지 않은 세 '꾹'이 오늘 우리의 다정함을 지켜줬다.


잊지 말자. 비망계정.

꺼진 화도, 다시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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