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아침.
예배가 있는 날이었지만, 나는 딱히 갈 생각이 없었다.
교회에 바래다 달라는 마늘의 말에 마지못해 샤워를 했다.
며칠째 욕조 배수구가 막혀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 문 앞에서 팬티를 입으려는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앞 단지에 사는 마누라 베프의 딸, 교회 갈 때마다 동행하는 아이가 온 것이다.
당황한 나는 팬티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안방으로 들어가려다 넘어졌다.
엉금엉금 기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대문이 열렸다.
"아니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이제 하니도 컸는데 팬티는 입고, 화장실에서 나오라고!"
나는 어릴 때부터 숱하게 넘어지며 컸기 때문에 넘어지고 나면 기분이 확 엉망이 된다.
엉거주춤 움직이다 넘어져, 대상 없는 모멸감에 기분이 상해 버렸고,
마누라 말투가 날카로워 나도 날카롭게 응수했다.
"나. 그렇게 해왔거든? 무관심하니 기억 못 하지?
근데 마침 그 순간에 ㅇㅇ이가 벨을 누른 거고, 당황해서 못 입고 들어온 거야!"
"오빠가 언제 그래왔어? 말을 해도 듣지를 않아!"
나는 몇 달 전부터 매번 그래왔다.
다만, 아이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는 그냥 나왔을 것이고, 마누라는 그 기억을 붙잡고 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오늘도 팬티를 들고 샤워하러 들어갔다.
옆에 있던 하니가 말을 보탠다.
"아빠는 왜 잘못을 인정하지를 않아?"
"아니, 하니야. 아빠가 팬티를 가지고 들어갔어. 입으려는데 벨소리가 난 거야. 아빤 당황하면 더 엉망이고."
그 순간 마늘이 한마디를 보탠다.
"하니야. 나와! 아빠랑 말 섞지 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침대에서 1분 정도 씩씩거리다 분을 삭이고 나왔다.
말없이 교회까지 15분을 운전했다.
돌아오는 길, 말로 설명 못 할 열패감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세 번 넘게 걸어서야 받으신다.
"아...여..보..세..요? 누..구..세..요?"
"엄마. 나야. 주무시고 계셨어요?"
"응. 그랬..나..보다."
"아. 엄마 깨워서 죄송해요. 아침 사드리려고 했지."
"아. 나 오늘 약속이 있다. 괜찮다. 너희들 메리 크리스마스 보내라~"
엄마는 내가 마누라랑 하니랑 함께 전화를 건 줄 아셨나 보다.
엄마 덕에 기분 풀렸다.
마누라, 딸, 엄마 다 메리 크리스마스여야겠다.
이따 두 여자 들어오면, 화내지 말고 잘 지내야겠다.
방금 들어온 딸이 서재 방문을 빼꼼히 열더니,
"아빠, 아침에 짜증 내서 미안해~"
"아빠도 미안해~"
모가 참 많은 나.
이런 나를 견뎌 준
세 꼭짓점들.
올해도,
메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