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쓰바시바 알아?"
"아니? 일본어야?"
"어,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래."
"아하! 몰랐네."
"아빠. 그동안 키워주셔서 쓰바시바."
"이따가 교회 가서 꼭 말씀드려. 하나님 쓰바시바."
이런 장난을 질색하는 마누라는 곧장 정색한다.
"니들, 그만하고 갈 준비나 해라"
하니는 나에게 자꾸 귓속말을 건다.
마지막 '쓰바시바'를 곁들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교회에 와서 찾아보니, '감사합니다'라는 뜻은 없었다.
오늘은 내가 두 번이나 미룬 귀우들과의 약속이 있는 날이다.
요즘 뜸했던 엄마한테 미안해, 이른 아점을 먹자고 새벽에 전화를 드렸었다.
예배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차 빼달라는 전화인 줄 알았더니, 딸내미다.
"아빠. 나 집에 휴대폰을 두고 온 것 같아. 가져다줘."
"아빠 일단 예배 중이니까 문자로 대화하자."
'지금 집에 가서 갖다주면 안 돼?'
'차에 있는지 보고 전화할게. 집이면 못 가져다줘'
'왜? 나 중요하단 말이야. 제발 플리즈.'
'가져다줄게'
집으로 가는 길,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죄송해요. 오늘 모임이 있는 걸 깜빡했어요. 신년에 맛난 거 먹어요."
"오케이. 난 아무렴 좋다. 너희들 모두 즐거운 연말 돼라."
엄마. 미안.
당신 손녀가 오늘도 이겼다.
엄마는 나를 기다렸다.
엄마는 늘 나를 기다렸다.
결혼 전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던 나를, 결혼 후에는 점점 뜸해지는 나를.
손녀가 태어난 뒤, 엄마는 기다림의 감각마저 잃어버렸다.
그 엄마의 아들은 이제 딸을 기다린다.
숙제가 끝나기를,
오분이면 닿는 학원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의 미련했던 사랑을 반 푼이나마 알아줄 날이 오기를.
사랑은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의 기다림이다.
나는 오늘도 사랑을 놓침으로써
사랑을 붙들었다.
흩어진 것들이 다 모일 날이 있겠다.
덧 : 방금 블로그 이웃분이 아래 댓글로 알려주셨다.
일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로.
'쓰바시바'는 '감사합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