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는 열두 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무렵,
준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던 강파른 여치였다.
담배만 안 물었지,
길바닥에 떨어진 만 원짜리 보듯 사람들을 꼬나보기 일쑤였다.
아이는 작년 12월부터 술 약속이 잦은 아빠에게 어떤 섭섭함도 내비치지 않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아빠 언제 와?" 하며 전화를 걸어오던 아이가 요즘은 감쪽같다.
섭섭한 건 내 노릇이지만, 아빠의 별푼 없는 가오를 지키느라 입만 한두 번 오물거리곤 한다.
해가 바뀌며 아이는 수학 학원을 옮겼다.
무서운 선생님으로 정평이 난 곳이다.
어제는 그 첫 등원 날이었다.
그 여파로 수영 학원 가는 요일을 바꾸었는데, 마늘에게 물어보니 정확히 알려주지 못했단다.
수학 학원이 끝나는 시간과 수영 학원 셔틀을 타는 시간 사이가 빠듯해 네 시 반부터 전화를 계속 걸었다.
문자를 넣어 두었지만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될 듯했다.
아이는 받지 않았다. 게임을 하고 있나 싶었고, 부아가 찼다.
지친 퇴근길, 다시 걸자 전화를 받는다.
"아빠가 계속 전화했는데 못 들었어? 계속 게임하고 있었던 거야?"
"어. 그만하려... 했어."
목소리에 힘이 없다.
2차 채근을 하려다 꾹 참고 집으로 향했다.
"아빠가 수영 때문에 계속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아? 무음이었어?"
"방에서 게임하고 있었어."
고개도 들지 않고 목소리는 장판 밑으로 꺼진다.
집에서 제일 추운 자기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다.
애잔함이 올라온다.
너는 내 모든 것 중 단 하나인데, 그제야 모드를 바꾼다.
두 팔 가득 아이를 안고 여쭌다.
"학원 힘들었어? 어땠어? 무섭드나? 왜 제일 추운 방에서 하고 있어?"
잠깐의 쭈뼛, 금세 풀리는 얼굴.
"아빠, 선생님이 디따 무서워. 나는 첫날이라 안 혼난 것 같은데 다른 오빠들한테 소리를 지르셔. 나도 숙제 제대로 안 해가면 혼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아."
"아빠, 이가 수학학원에서는 숙제가 네 장이었는데 열여덟 장을 풀어오래. 무려 다섯 배야. 큰일 났다 진짜."
"이쁜 아가. 아빠가 물 닭갈비 사줄까?"
"응."
마누라는 어제 남은 스파게티에 미역국을 먹이라 했지만 요만큼은 내 맘이다.
두 손 꼭 맞잡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단골집으로 향한다. 내 이쁜 딸이 2주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곳.
물 닭갈비 소를 시키고 치즈떡사리, 당면 사리를 추가한다.
치즈떡 몇 알을 입에 녹이자 아이의 눈빛이 사르르 더 풀린다. 그 틈을 타 슬쩍 킥을 던진다.
"아가, 방학 때 역사 특강, 아빠가 옷 사줄 테니까 한 번 들어보면 안 될까? 플라톤 쌤이 또 전화하셨어. 하니만 안 듣는다고, 재미있게 가르쳐보신다고."
몇 번의 설득과 회유에도 거부하던 아이. 마늘과 나는 포기 수순이었다.
"응! 그럼 들을게"
"오. 완전 멋진 이쁜이. 아빠 선생님한테 카톡 보낸다."
"그래. 아빠 옷 고르게 폰 좀 줘"
카톡을 보내고 폰을 건넨다.
쇼핑을 하며 맛나게 잡수신 아이는 기분이 좋다.
집에 와서 춤을 몇 개 추더니 나보고 바싹 옆자리에 앉으라 하고 투덜을 곁들이며 숙제를 시작한다.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무서운 선생님과 혼나는 오빠들 이야기를 추임새 삼아 문제를 풀어간다.
나는 귤을 대령하고 책을 펼친다.
"아빠, 귤로는 부족해. 나가서 딸기든 블루베리든 사 와!"
"오케이"
큰 마트로 달려간다.
그저께 딸기를 바쳤으니 오늘은 블루베리.
영어 숙제를 마치고, 수학 숙제를 하던 아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아가. 졸리면 자자. 나머지는 내일 하는 거 어때?"
"안 돼. 오늘 아홉 장 하고 잘 거야."
하니는 잠들기 전 내 폰을 집어 엄마한테 카톡을 보낸다.
'나 생애 처음으로 수학 하루에 아홉 장 해봐. 내일도 아홉 장!! ㄷㄷ!! 이틀로 나눠서 하는 거임!'
여흥에 한창인 마누라는 답이 없다.
이쁜 내 딸을 폭 안는다.
착한 충전기, 이쁜 수면제.
I love you~